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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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만 "지구 살려야 …" "공공의 문제" 치부 행동 안해 [뜨거운 지구, 차가운 관심]

(1회) "기후변화는 심각" 속마음은?
대다수 지구온난화 지식·정보 ‘깜깜’/ 먹고살기도 힘든데… 북극곰 ‘글쎄’
주체별 기후변화 대응 노력 질문에/ 나 자신 〉 환경단체 〉 국제사회 〉 정부
79% “재생에너지 대체 공감” 불구/ 탈원전·전기요금 인상 찬반 팽팽

미리 말하자면, 이것은 지루한 이야기다.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도 올랐으며, 파국을 맞기 위해선 앞으로 1도, 아니 0.5도 이상 오르지 않게 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기 말 우리는…’

 

‘…’에 들어갈 답은 뻔하다. 해수면이 상승해 작은 섬나라를 집어삼킬 것이고,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 것이며, 식량 생산량은 급감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경고지만 너무 익숙한, 결말이 공개된 영화나 엄마 아빠의 잔소리 같은 이야기다.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는데 우리의 관심은 식어간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 폴란드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에 언론보도는 인색했고, 여론은 조용했다. 올여름 미국 알래스카와 유럽의 살인폭염도 해외토픽일 뿐이다. 왜 우리는 벌써 기후변화에 싫증이 난 걸까.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4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불쌍한 북극곰’은 왜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움직이지 못했을까. 부서진 빙하 조각에 아슬아슬 올라선 북극곰은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그러나 곰의 애처로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삶을 살고 있다. 세계일보와 공공의창의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후변화에 얽힌 불편한 심리가 읽힌다.

 

◆“기후변화 대응, 남은 못하지만 나는 잘해”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인식에는 성별이나 연령별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지역별로는 최대 17.7%포인트가 벌어졌다. 강원과 제주, 서울에서 심각하다는 응답률이 높았고 대구와 경북은 비교적 낮았다.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자연변동과 인간활동’이 가장 많이 꼽혔다는 건 뜻밖이다.

 

‘지구 자전축 기울기나 공전궤도의 변화 등 자연적인 변동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변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산업혁명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는 인간이 과도하게 내뿜은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를 포함한 거의 모든 과학자의 일치된 의견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자연변동 때문이다’라는 응답률은 7.8%였는데 19∼29세(12.1%), 30대(16.9%)에서 특히 그렇게 믿는 경우가 많았다.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리의 인식이 과학적 지식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습관적인 관용어처럼 머리에 각인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변화 대중 강의를 하다 보면 ‘당연히 알겠지’ 싶은 내용에도 깜짝 놀라며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반응하는 이들이 적잖다”면서 “교육이나 언론 등을 통해 정보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국민들은 주체별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묻는 말에 ‘나 자신’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줬다.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주체는 언론으로, 응답자 26.6%만 ‘언론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 정부’는 40.9%, ‘국제사회’는 48.4%, ‘환경단체’는 51.8%의 응답자들이 노력한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 국민 일반’과 ‘나 자신’에 대한 평가점수가 완전히 갈린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 개개인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한다’는 데 28.7%만 동의했고, 66.2%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언론이 받은 것만큼이나 박한 점수다. 반면 나 자신은 57.1%가 노력하고 있다고 답해 국제사회나 환경단체보다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건 결국 ‘북극’의 ‘곰’ 이야기

 

단기∼장기 과제 우선순위 결정에 대한 결과를 보면, 머리로 아는 문제가 곧바로 실천이나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답한 이들 중에도 기후변화를 단기 우선과제로 꼽은 경우는 8.1%에 그쳤고, 경제성장이 27.8%로 가장 많았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면서도 즉시 대응하지 않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은 다양한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교수(심리학)는 인간의 심리는 네 가지 자극(PAIN)에 반응하도록 진화됐다고 주장한다. 개인적(Personal)이거나 갑작스러운(Abrupt) 자극, 비도덕적(Immoral)이거나 현재(Now) 벌어지는 자극이 여기 해당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이 중 어떤 자극과도 관련이 없다. 기후변화는 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현상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배출원이므로 비도덕적이라 손가락질하기도 어렵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비극적인 결과는 금세기 말은 돼야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느끼고 생활습관, 산업구조를 바꿀 만한 동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얇은 얼음 조각에 올라탄 북극곰은 불쌍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건 ‘북극’에 사는 ‘곰’ 이야기인 것이다.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현 황상민 심리상담소 대표)는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답할 때 일상생활에서의 경험 때문이라기보다는 ‘모범답안’을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대개 기후변화는 실생활과 접점을 찾기 어려운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탈원전·전기요금인상 찬반 팽팽

 

우리나라 온실가스의 87.1%는 석탄화력발전 같은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한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탈원전을 둘러싼 찬반 대립, 재생에너지 회의론, 누구도 건들고 싶어하지 않는 전기요금 인상 문제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설문 결과에도 이런 답답한 상황이 담겼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50.9%는 ‘늘려야 한다’, 49.1%는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사실상 동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남성과 50대 이상 그리고 정부와 환경단체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불충분하다고 느낄수록 원전을 늘리자는 의견이 많았다.

 

전기요금 인상도 ‘부적절하다’(50.3%), ‘불가피하다’(49.7%)로 팽팽했다. 원전의 비중을 늘리자는 응답자의 61.4%는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한 반면, 원전 축소 지지자의 61.2%는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원전과 전기요금이 한 묶음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생에너지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여론이 우세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자는 데 78.8%가 공감해 비공감 의견(17.1%)을 훌쩍 뛰어넘었고, 입지잠재력을 두고도 ‘수상·지붕형 태양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지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66.0%로 부정적인 의견보다 더 많았다.

 

여론조사를 수행한 한국여론연구소 이은영 대표는 “기후변화가 산업·경제적으로 또 미래세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공론형성 수준을 보다 다양화하고, 다양한 홍보와 설득 논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공공의 창은

 

‘기후변화 인식 조사’는 지난 1∼2일 전국 만 19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임의전화걸기(RDD) 방식 자동응답 조사(무선 100%)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세계일보와 ‘공공의창’이 공동기획하고 한국여론연구소가 조사를 담당했다.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한국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세종리서치·현대성연구소·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4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2016년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공익성 높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