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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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해도 학자금 빚갚기 빠듯 … 청년이 살아야 사회 활력 [연중기획 - 청년, 미래를 묻다]

빚에 저당잡힌 청춘… '청년실신' / 작년 30대 미만 가구주 부채 2397만원 / 2012년 1283만원서 매년 증가세 심각 / 전체 개인 파산신청 5년새 23.9% 줄어 / 20대는 되레 29.1% 늘어 사회적 문제 / 직장 겨우 얻어도 이자 감당도 어려워 / 학자금 장기 미상환자들도 점점 늘어나 / 정부 지원책 부처별 흩어져 효과 못내 / 컨트롤타워 세워 종합 대책 마련 필요

#1. 대학 졸업 후 2년간 취업준비생으로 지낸 최모(28)씨는 올해 3월 꿈에 그리던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취업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직장인이 됐으니 신용카드 하나 만들어볼까 해서 지난 6월 신청했지만, 발급을 거절당했다.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최씨는 “신용이 왜 떨어졌나 알아봤더니 취준생 시절 학자금 대출 이자를 6개월 정도 연체한 게 작용한 듯했다. 그땐 생활비와 취업 스펙 관련 학원비 등에 쪼들리느라 학자금 대출 이자를 신경 못 썼다”면서 “취업엔 성공했지만,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이 여전히 3000만원 정도 남아있다. 이를 언제 다 갚고, 결혼자금을 마련하나 싶다”면서 씁쓸해했다.

 

#2. 서울 소재 사립대학을 졸업한 이모(27)씨는 취업난에 1년째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나름 인정받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졸업 후 남은 건 대학졸업장 한 장과 2500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뿐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취방 월세를 비롯해 취업준비를 위한 각종 학원비과 생활비, 학자금 대출이자 등을 부모에게 손을 빌리기가 미안하다는 이씨. 아르바이트로 월 60만원을 벌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씨는 “취업 준비에만 올인해도 떨어지는 마당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준비하려니 친구들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불안하다”면서 “대학생 시절 학자금 대출은 졸업하고 금방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이나 좋은 직장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루빨리 ‘어디라도 취직해 갚아야지’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청년실신은 ‘청년 실업’과 ‘청년 신용불량’을 합친 신조어로 장기화된 취업난으로 청년들의 취업이 갈수록 늦어지고, 이 탓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학자금 대출 등 교육비를 감당 못해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 신조어다.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을 떠안고 졸업하지만, 취업이 잘 되지 않으면서 생활비나 대출이자 등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그러다보면 취업도 늦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청년가구 빚 2397만원, 파산 신청률 5년 새 30% 급증

 

통계청이 지난해 연말 발표한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30대 미만 청년 가구주의 부채는 2397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의 2393만원에 비해선 단 0.2%만 늘었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42.3%가 증가했다.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6년 30대 미만 청년 가구주의 부채는 1681만원이었지만, 2017년엔 2393만원으로 훌쩍 뛴 것이다. 30대 미만 청년 가구주의 부채는 2012년 1283만원에서 매년 증가하고 있다. 30대 미만의 부채 보유 가구도 절반 가까이에 달한다. 2013년 54.5%에서 2016년 44.7%로 감소했던 30대 미만 부채 보유 가구는 2017년 47.7%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지난해엔 49.1%로 나타났다.

 

20대 청년들의 개인파산 신청도 늘어나고 있다. 시민단체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내지갑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개인파산 신청은 2013년 5만6910명에서 지난해엔 4만3292명으로 23.9%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20대는 2013년 628명에서 지난해 811명으로 29.1%나 증가했다. 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 많아 개인파산 신청자 규모는 다른 나이대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20대들이 겪는 경제적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대 청년들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경제적 부담은 역시 대학 등록금이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 후에 원금을 상환하는 학자금 대출을 받지만, 졸업 후 3년 이상 못 갚는 장기 미상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취업 후 등록금 상환’의 장기 미상환자 규모 및 액수는 2013년만 해도 334명, 12억에 불과했으나 2017년엔 1만2012명, 944억으로 늘어났다. 2019년 현재는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 이자율은 2.2%로 낮지만, 2010년대 초반엔 5%가 넘을 때도 있었다. 2010년대 초반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학생들이 이제 20대 후반에 접어든 사회초년생이 많음을 감안하면 이들에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원금은커녕 이자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취업을 해도 빚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지난 4월 신한은행이 발간한 ‘2019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사회초년생(3년차 이하 직장인)의 부채는 2017년 2959만원에서 2018년 3391만원으로 14.6% 늘어났다. 이들 중 44%는 대출을 보유하고 있고, 대출 상환 소요 기간은 4년에서 4.9년으로 길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 중 42.4%가 제2·3 금융권을 이용해 전체 세대에 비해 4.3%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창출부터 학자금 대출 탕감까지

 

정부가 청년들의 부채 문제 등에 대해 마냥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득 요건 미충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제도를 미처 숙지하지 못해 청년들이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정부 부처별로 청년 지원 정책이 흩어져있어 연계 지원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청년 부채는 일자리 문제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취업난을 해결할 컨트롤 타워를 설립하고 정부 부처 간의 연계를 통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보통 빚을 지는 청년들의 경우엔 가정 자체에 빚이 많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년층에만 국한된 대책이 아닌 가계 빚 전체를 낮출 수 있는 다양한 정부 대책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민단체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한영섭 센터장은 빚에 저당 잡힌 청춘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학자금 대출 탕감 등과 같은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센터장은 “2012년부터 크게 확대된 국가 장학금 제도로 학자금 신규 대출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대출 잔액은 2010년 8조9000억원대에서 2014년부터 15조원대로 올라선 이후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심지어 대학 진학률이 80%에서 68%대로 떨어졌음에도 말이다. 이는 졸업 후 상환이 잘 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한 센터장은 “학자금 부채라는 ‘시한폭탄’이 유예라는 이름으로 축소 지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15조원의 학자금 대출 탕감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며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 예산이 약 50조원이라는데, 학자금 부채 잔액 탕감은 15조원이면 가능하다. 사람이 있어야 도시가 있는 것 아닌가. 국가예산 배분에 있어 청년 대책이 우선순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부채가 비단 청년 개인에게만 고통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활력을 잃게 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청년들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소득과 일자리, 올라가기만 하는 집값 등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자금이나 생활부채가 삶의 중압감이 된다면 미래를 위한 도전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위한 단기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등록금 인하, 학자금 대출 이자 내리기 등의 단기적인 대책이라도 필요한 이유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