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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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끄는 e스포츠… 전통 스포츠 구단, 팀 만들어 판 키운다

스포츠 산업 지각변동 / 2019년 글로벌 시장 규모 1조4000억원 / 시청자 수 1억6700만명… 지속 성장 / 1억명선 무너진 NFL 슈퍼볼과 대조 / IOC, 파리올림픽 때 종목 도입 논의 / 미국·프랑스·스페인 등서 리그 출범 / 대학들 학과 개설 특기생 유치 박차 / 해외 유명스타도 앞다퉈 투자 나서 / 국내선 정부 미온적 태도에 발 묶여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시즌 결승전 모습. 라이엇게임즈 제공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롤파크 LCK아레나. 2019 리그오브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2라운드 SKT T1과 젠지(Gen.G)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관중석에는 각종 응원 메시지가 적힌 플래카드와 응원도구를 든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정규리그였음에도 응원 열기와 경기 몰입도는 플레이오프나 결승 못지않았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이모(29·여)씨는 “날씨에 관계없이 쾌적하게 실내에서 즐길 수 있고, 가까이에서 선수들이 소통하며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스프링 시즌에 이어 서머 시즌에도 경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어 4번째 규모인 국내 게임 시장에서 e스포츠가 국내에서도 문화 콘텐츠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해외에서도 각종 전통 스포츠에 비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팬들의 관심은 물론 투자까지 집중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8일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글로벌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올해 11억84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에서 2022년 29억6300만달러(약 3조5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청자 수는 같은 기간 1억6700만명에서 2억76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시청자가 2015년 1억1444만명에서 올해 9819만명으로 줄어 1억명 선이 무너진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이나 2016년 2284만명에서 지난해 1412만명으로 줄어든 미국프로야구(MLB) 월드시리즈 등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e스포츠에 눈독 들이는 전통 스포츠

이러한 흐름은 전통 스포츠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우선 투자와 광고 등의 판세를 가장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프로스포츠 구단·리그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로펌사인 폴리앤라드너에 따르면 올해 e스포츠 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투자를 할 것으로 예측되는 주체는 기존 프로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구단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축구나 야구 등의 종목에 투자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본 경험치가 쌓여 있는 만큼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5년에는 터키의 축구클럽인 베타식스가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팀을 창단해 터키의 LoL 리그인 TCL에 출사표를 던졌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등의 구단도 축구 게임 ‘피파17’ 종목의 프로게이머를 영입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e리그앙’, 스페인에서는 ‘버추얼 라리가 e스포츠’라는 명칭의 축구 게임 리그가 출범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미국 축구리그(MLS)에 ‘피파18’ 대회가 탄생했고 호주와 독일, 일본 등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축구 외에도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 농구, 포뮬러 원(F1) 등의 주요 전통 스포츠 구단들이 경쟁적으로 e스포츠에 눈을 돌린다. 미식축구는 비디오게임의 e스포츠대회를 출범했고, ESPN 등 주요 채널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농구에서는 1999년 출시된 농구 시뮬레이션 게임 NBA2K가 NBA의 17개 팀을 끌어들이며 본격 리그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8월에는 독일의 F1팀 메르세데스가 4명의 선수를 영입하며 e스포츠팀을 공식 창단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24년 파리올림픽 때 e스포츠의 종목 도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지만 전통 스포츠가 시청률 등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하락세가 지속하는 만큼 차세대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같은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학과 투자업계도 ‘비상한 관심’

미국과 중국 등을 중심으로 e스포츠 특기생을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유타대는 2017년 LoL 장학금 제도를 마련했고, 캘리포니아주 어바인대는 ‘오버워치’ 장학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특히 어바인대는 캠퍼스에 e스포츠 경기장인 ‘UCI e스포츠 아레나’를 짓는 등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오하이오주 애크론대는 세계 최대의 e스포츠 시설 유치를 공표했다. 중국에서는 아예 교육부가 나서 대학 과목 및 전공에 e스포츠 개설을 주도하고 있다.

이렇게 장래가 유망한 분야를 투자자들이 외면할 리 없다. 기존 전통 스포츠 구단뿐 아니라 유명 스타들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북미의 LoL 프로게임구단 ‘팀 리퀴드’의 운영진 대열에 합류했고, 그가 속한 투자그룹은 지난해 이 구단의 모회사에 2600만달러(약 308억원)를 투자했다.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와 일본의 축구 스타가 설립한 투자 펀드는 다른 대형 투자들을 끌어들여 글로벌 프로게임구단 젠지에 4600만달러(약 545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에서도 e스포츠구단 T1을 운영하는 SK텔레콤이 올해 초 글로벌 미디어그룹 컴캐스트와 조인트 벤처 설립을 공식화하는 등 관련 흐름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e스포츠 강국 한국의 상황은

‘IT(정보기술) 강국’인 우리나라는 e스포츠계에서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는 올해 국내 LoL리그인 LCK 봄 시즌의 시청 현황에서도 입증됐다. 트위치나 아프리카TV 등의 채널을 통한 LCK 봄 시즌 시청자는 국내에서 총 61만8000명(정규리그 15만9000명·포스트시즌 45만9000명)이었고, 해외에서는 297만5000명(정규리그 55만5000명·포스트시즌 242만명)으로 6배에 육박했다. 국내 e스포츠의 세계적 입지가 어떠한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e스포츠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WCG(World Cyber Games)’와 최대의 프로 e스포츠 대회인 ‘롤드컵(LoL 월드컵)’ 등 주요 무대에서도 한국 선수·선수단의 선전이 이어지는 만큼 국내 e스포츠에 대한 해외 팬·투자자의 관심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는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e스포츠 역량을 가졌음에도 국민 인식과 정부 태도 등의 탓에 대학에서는 아직도 e스포츠 관련 학과보다는 게임 제작 위주의 학과 편제에 그치고 있다”며 “여러 종목에서 우리나라 e스포츠 선수들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해 해외리그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