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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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병풍·탄풍에 이어 日風...양정철이 내민 카드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소속 의원에게 '한일 갈등 양상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연구원을 이끄는 책임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원장인 까닭에 31일 자유한국당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내년 선거만 보는 문의 남자의 부적절한 행보다"며 강력 반발했다. 

 

야당은 과거 선거판에 영향을 미쳤던 북풍(北風)→총풍(銃風)→병풍(兵風)→탄풍(彈風)처럼 이번엔 한일갈등, 즉 '일풍(日風)이 21대 총선에 이용되는 것 아닌지 경계하는 모습이다. 

 

◆ 한일갈등 총선에 영향, 한국당에 대한 '친일프레임'효과는 별로

 

민주연구원은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한 여론조사(7월 26~27일 1016명 조사, 표본오자 95%신뢰수준에서 ±3.1%p, 중앙여심위 홈페이지 참조)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요약해 지난 30일 소속 의원들에게 참고하라면서 이메일로 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무리한 수출규제로 야기된 한일갈등에 대한 각 당의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많고, 원칙적인 대응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다.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연합뉴스

한국당이 반발하고 있는 '친일프레임'과 관련해선 "한국당에 대한 '친일 비판'은 지지층 결집효과는 있지만 지지층 확대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친일 비판 공감도는 공감 49.9%, 비공감 43.9%로 공감이 적은 것은 '정쟁' 프레임에 대한 반감으로 판단된다"며 예상보다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대응으로 한일군사정보호보협정(GSOMIA) 폐기는 한국당 지지층만 제외하고 모든 계층에서 찬성이 높게 나타난다"며 지소미아 폐지가 여당으로선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했다 .

 

◆ 한국당 "총선에만 골몰"· 정동영 "양정철 자르라"· 바른미래 "국민삶놓고 도박"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자 한국당은 발끈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31일 “대통령 복심이라는 양정철 원장이 맡고 있는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문재인 정권의 실체이자 영혼이다. 나라가 기울어도 경제가 파탄 나도 그저 표, 표, 표만 챙기면 그뿐인 저열한 권력지향 몰염치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바로 이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이날 "국민은 한일 경제전쟁의 불똥이 삶에 어떻게 튈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청와대와 민주당에 이 사태를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려는 속셈을 내비친 것인가 묻고 싶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민주당이 공식 사과하고 양정철 원장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국익보다 ‘표’가 먼저인 민주당. 반일감정을 만들어 총선의 ‘재료’로 활용하는 민주당은 나라를 병들게 만드는 ‘박테리아’같은 존재다"며 "국민의 삶을 놓고 도박하지마라"고 몰아쳤다. 

 

◆ 아차싶은 민주당 "개인의견이지만 부적절"· 이해찬, 양정철에 '주의' 

 

이번 일이 '일풍'논란으로 커지자 민주연구원은 "충분한 내부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며 사과한 뒤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주의와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양 원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후 "여론조사에 있어서는 주의를 기해야 한다"고 경고성 당부를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 북풍, 총풍, 병풍, 탄풍 등 선거 때마다 바람에 휘청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이 '한일갈등은 총선에서 호재'라는 취지의 민주연구원 보고서에 긴장하는 것은 과거 경험에서다. 

 

선거 때마다 '무슨 무슨 풍'이 위력을 발휘했고 한국당(보수당)은 재미를 보기도 바람에 쓸려 넘어져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20세기 막판까지 가장 큰 바람은 북한 위협을 선거에 끌어들인 북풍(北風)이었다. 유권자 상당수가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데다 반공교육을 단단히 받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가까운 북풍으로는 1987년 제13대 대선 직전인 11월 29일에 터진 대항항공 888기폭파사건. 정부는 폭파범 김현희를 즉각 서울로 압송했고 1노 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싸움에서 노태우 후보가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 

 

1997년 16대 대선에선 한나라당 후보 측 관계자가 북한 측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총풍도 북풍 계열이다. 2012년 18대 대선서도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며 ‘신 북풍’ 논란이 일었다. 

 

군복무가 의무화 된 우리 안보상황에서 병역기피는 금기사항이다. 따라서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은 당선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를 노린 것이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 때 나왔던 이른 바 ‘김대업발 병풍’으로 인해 '대쪽 이미지'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치명상을 입고 낙마했다. 한나라당은 북풍을 끌고 왔지만 병풍엔 적수가 되지 못했다.

 

탄풍은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여파를 말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심판대에 세웠던 당시 한나라당이 '탄풍'에 휘말려 121석을 얻는데 그쳤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151석을 획득, 진보계열 정당 사상 처음으로 과반의석을 넘기는 기록을 세웠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유증으로 숨만 붙어있는 것도 다행으로 여길 만큼 참패를 면치 못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