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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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스캔들 등 통해 조선의 성풍속도 낱낱이 복원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1만8000원

에로틱 조선-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 1만8000원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인간의 삶도 ‘생존’과 ‘번식’을 쌍두마차 삼아 굴러간다. 이를 가능케 하는 본능적 욕구의 뿌리는 ‘식욕’과 ‘성욕’이다. 이는 인류 문명의 커다란 동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식욕은 신성시됐지만 성욕은 금기시됐다. 역사 저술가 박영규씨는 “여기에는 권력자로 불리는 자들, 즉 식욕의 소산물을 차지한 자들의 모종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마음껏 해소키 위해 힘없는 자들의 성욕에 족쇄를 채워 법과 신분, 제도의 틀로 이들의 성욕을 제약하고 가둬 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신간 ‘에로틱 조선’은 춘화와 음담패설, 스캔들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조선의 성풍속도를 낱낱이 복원했다. ‘동방예의지국‘ ‘선비의 나라’ 같은 미사여구에 가려진 조선시대 권력자들의 관능적 이면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시대를 불문하고 성적으로 폐쇄된 사회에서 자유분방했던 존재는 힘 있고 권력 있는 남성들이었다. 남녀차별, 신분격차가 심할수록 권력을 가진 소수의 남성이 누리는 성적 행위의 폭은 그만큼 넓어졌다. 힘 있는 남성은 여성을 상대로 맘껏 성적 유희를 즐겼고, 힘없는 여성은 그 희생물로 전락했다.

저자는 그 전형적 사례가 바로 조선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였던 이 시대에, 특히 성에 대한 폐쇄성은 가히 폭력적이라고 할 정도로 심했다는 것. 권력과 부를 거머쥔 남성들은 기생과 첩을 이용해 성욕을 마음껏 충족했고, 그것을 풍류라는 이름으로 치장하고 합리화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공자와 맹자를 들먹이며 인의예지를 늘어놓다가도 기생을 차지하기 위해 길 한가운데서 멱살잡이를 벌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조선의 사내들이 권력을 앞세워 성욕을 해소하는 동안, 여인들은 ‘에로틱 심벌’이라는 멍에를 쓰고 불합리한 현실에 놓였다. 기생들은 ‘길가에 핀 꽃’으로 불리며 언제 누구에게 꺾일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았고, 의녀들은 술자리에 불려다니다 권력자의 첩으로 들어앉기 일쑤였다. 첩을 둘러싼 갈등이 정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방 여인들은 부부의 연을 맺고도 남편을 사수하는 싸움에 들어가야 했고, 첩들은 ‘눈치 백 단, 눈물 백 근’의 서러운 삶을 살았다. 이런 현상은 궁궐에서 특히 심했다. 왕비와 후궁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애정을 다퉜고, 수많은 궁녀들은 ‘왕바라기꽃’이 돼 왕에게 승은을 입을 기회만 엿봐야 했다.

이번 책은 춘화와 육담,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에로티시즘의 내용을 채집하고 분석해 엮었다. 이들의 설움과 애환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약자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뿌리를 짚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권이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