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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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끝내 철거될 듯…"日 정치인들은 평화를,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다"

뿔난 시민들 "日 역사 지속적으로 은폐, 아베 정권 들어 더 심해져"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이 끝내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관계자는 3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오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의 일방적인 통보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가 오늘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중단됐다"라고 밝혔다.

 

아사히신문도 오오무라 지사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전시 중단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오오무라 지사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실행위원회 위원장이다.

 

오오무라 지사는 "(전시에 항의하는) 팩스와 메일, 전화가 사무국을 마비시켰다"라면서 "행사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서 열리는 '표현의 부자유, 그 후'는 그동안 외압으로 제대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아 선보이기 위해 트리엔날레 기획전 형식으로 마련됐다.

 

전시는 1일 개막하자마자 일본 정부 인사들의 전방위적인 압력과 우익 세력의 집단 항의에 부닥쳤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관방장관이 2일 정례 회견에서 "(행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 교부 관련 사실관계를 조사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같은날 전시장을 찾은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우익 성향 시민들이 사무국을 대상으로 테러에 가까운 항의에 나서면서 결국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 전체가 개막 사흘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에서 공식 개막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에 출품된 김운성 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이 작품은 지난달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일본군 성노예제와 여성 인권'을 주제로 열린 `보따리전'에도 전시됐다. 연합

◆日 최대 국제예술제 출품, '평화의 소녀상' 끝내 철거될 듯

 

이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해 안세홍 작가의 위안부 피해자 사진, 조선학교 학생의 그림 등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출품작 전체의 전시가 다음 날부터 중단된다.

 

실행위원회는 일단 전시장 바깥에 경찰 병력을 배치해 전시를 폐쇄하고, 철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고 트리엔날레 관계자가 전했다.

 

일본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이 내려지는 것은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 전시에서 20cm 크기 모형 소녀상이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들과 참여 작가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단 통보를 받은 큐레이터들은 전시장 바깥에서 일본 정부와 아이치현 측의 조처에 대한 항의문을 작성 중인 상황이다.

 

이날 오전 귀국한 김운성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소녀상 철거는 일본 스스로 '표현의 부자유'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성토했다.

 

김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극복이 담긴 소녀상을 전시함으로써 일본 시민과 대화하려는 것인데 일본 정치인들이 끝내 이를 저지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저들 정치인은 평화를,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정권 규탄 3차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소녀상 철거, 日 스스로 '표현의 부자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조치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고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일본 내 시민사회단체도 아베 정권이 갈등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며 이날 집회에 연대의 뜻을 보탰다.

 

뉴스1에 따르면 정의기억연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흥사단 등 682개 단체가 모인 '아베규탄 시민행동'(시민행동)은 3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자리 소녀상 앞에서 '아베규탄 3차 촛불문화제'를 열고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최 측 추산 1만5000명이 넘게 모인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은 '아베정권 규탄한다, 강제징용 사죄하라' 라고 쓰인 손피켓을 들고 집회 장소를 가득 채웠다. 시민행동은 지난달 20일부터 매주 토요일 아베 규탄 촛불집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지난달 반도체 등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 3가지 수출에 대해 규제책을 내놓은 데 이어 전날 다시 한번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내린 것이 '적반하장식' 보복성 조치라고 꼬집었다.

 

또 강제징용 등 과거사를 사죄·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경향이 아베 정권 들어 더 심해졌다고 지적하는 한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를 즉각 파기해야 한다고 외쳤다. 

 

◆시민단체 "한일 시민 대립할 게 아닌 아베 정권에 대해 손잡고 연대하며 함께 싸우자"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어제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일본국제예술제에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했는데 나고야 시장이 와서 '위안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며 "일본은 역사를 지속적으로 은폐하고 있고, 아베 정권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사무총장은 "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올해 1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본이 진심어린 사죄를 하면 용서할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며 "공식적 사죄와 법정 배상을 묻는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의 과거사 사과를 재차 촉구했다.

 

권순영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은 일본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이를 대신 전했다. 권 위원장에 따르면 이 메시지는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이 보내왔다.

 

공동행동 측은 "(일본 정부의 조치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한국에 가하는 보복이고, 한일 간 긴장을 고조시켜 양국민 사이의 대립감정을 일으킨다"며 "이는 본인이 추궁당하고 있는 강제동원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무역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 기업이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게 해서 피해자가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요구"라며 "한일 시민은 대립할 게 아니라 아베 정권에 대해 손잡고 연대하며 함께 싸우자"고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