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가 도심 한복판에 일본 보이콧을 알리는 배너(banner)를 설치했다가 역풍을 맞고 바로 철거에 들어갔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6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너기를 내리도록 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국민과 함께 대응한다는 취지였는데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썼다.
서 청장은 "중구청의 NO재팬 배너기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일본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중구청장으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로 함께하겠다"며 "일본정부의 부당한 조치를 향한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가 다시 하나로 모여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유 불문하고 설치된 배너기는 즉시 내리겠다"고 썼다.
구는 이날 오전 동화면세점과 서울역 사이 세종대로 일부 구간에 '노(보이콧) 재팬'(No(Boycott) Japan :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배너 50여개를 설치했다.
애초 이날 밤 722개를 설치하기 시작해 총 1100개를 관내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세종대로, 삼일대로, 정동길 일대에 내걸 계획이었는데 일정을 앞당겼다.
여러 지자체들이 일본 제품 거래·사용 중단, 불매 운동 응원, 피해기업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원하고 있지만, 중구청이 '노 재팬' 배너를 내건 것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불매 운동이 '관제 운동'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을 비롯한 일본 시민까지 자극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중구청 홈페이지의 '구청장에게 바란다'와 '생활불편신고' 코너에는 배너를 철거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중구청 홈페이지 자유계시판에는 "진정 중구민을 배려하고 걱정을 하고 계신다면 노재팬 깃발을 거리에 달고 선동을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남대문, 명동, 충무로, 을지로 상가를 직접가서 상인들을 만나 한일관계 악화로 어려운 점은 없는지 구청에서 지원할 일이나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한다"라며 "아베가 노리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가 왜 나서나"라며 "민간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명지대 남시훈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울 한복판에 No Japan 깃발을 설치하는 것을 중단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남 교수는 "불매 운동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서울 중심에 저런 깃발이 걸리면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불쾌해할 것이고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하며 일본의 무역도발에 찬성하는 일본 시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불매 운동을 정부가 조장한다는 그림이 생길 것이며 이는 향후 정부의 국제 여론전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외교부 김인철 대변인은 특정 지자체 주도하에 서울 시내에 '노 재팬' 깃발이 내걸리는 것에 대해 "일본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수출규제조치 철회를 계속 촉구하는 한편 우리 정부가 신중한 검토와 깊은 고민을 통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모색해온 기조하에 여러 요소를 균형있게 고려한 해결방안을 마련했다"면서 "일본과 합리적인 해법을 함께 논의해 나가기를 기대하면서 그러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