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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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한국 기업일까? 일본 기업일까? [일상톡톡 플러스]

'日 불매운동' 확산…또다시 불거진 롯데그룹 국적 논란 / 치솟는 반일감정에 '일본기업' 정체성 논란 재점화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구조. 각사 종합

일본이 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을 뜻하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반일, 항일 감정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롯데그룹을 둘러싼 국적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모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데다, 국내에 일본기업과 합작사 형태로 진출한 브랜드가 유달리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롯데는 사실상 일본 기업이니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는 과연 누리꾼들의 주장처럼 일본기업일까.

 

결론부터 말해 현재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기업의 국적성을 따져보면 법적으로 한국 롯데는 한국 회사, 일본 롯데는 일본 회사로 보는 것이 맞지만, 지배구조를 보면 롯데는 엄연히 ‘일본 기업’이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에 절대적인 지위로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롯데그룹에서 지주사 만큼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19.07%)를 비롯 광윤사(5.45%), L투자회사(72.7%) 등 일본 계열사들이 지분의 99%를 보유 중이다.

 

이에 따라 일본으로 매년 흘러 들어가는 배당금도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롯데 측은 ‘일본롯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내 기업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계열사가 많은 롯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유니클로’다. 국내에서 유니클로를 유통하는 FRL(에프알엘)코리아는 롯데쇼핑이 49%, 일본 유니클로 본사가 5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유니클로가 매출을 올릴수록 일본 본사의 수입이 극대화되는 구조다. 지난해 유니클로는 한국에서 무려 1조3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함께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무인양품’ 역시 대표적인 롯데와 일본기업 합작사다. 생활소품을 판매하는 무인양품은 2004년 롯데상사와 일본의 ㈜양품계획이 각각 40%, 60%의 지분을 투자해 설립했다.

 

GS25와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편의점 업계가 이번달부터 맥주할인 행사에 일본맥주를 제외하기로 하면서 아사히 등 일본맥주의 점유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수입맥주 1위인 아사히 맥주도 롯데가 수입해 판매 중이다. 아사히 맥주의 수입사인 롯데아사히주류는 롯데칠성음료가 50%, 일본 아사히그룹홀딩스가 50%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롯데지주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세븐일레븐의 한국법인 코리아세븐의 지분 97%를 보유하고 있다. 코리아세븐은 미국 세븐일레븐과 계약해 운영하고 있지만, 세븐일레븐 자체가 일본 브랜드인 만큼 로열티 수익은 최종적으로 일본 기업 세븐앤아이홀딩스로 유입된다.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지난달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소재 한 시장 입구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수원=뉴시스

롯데와 일본 합작사 중엔 전범기업도 포함돼 논란을 낳았다.

 

롯데케미칼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상사, 우베흥산 주식회사, 미쓰이화학 등 3곳의 전범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2006년 미쓰비시케미칼과 손잡고 각각 50%씩 지분을 갖고 설립한 '롯데MCC', 롯데케미칼과 일본 미쓰이화학이 5:5 합작투자해 설립한 '롯데미쓰이화학', 롯데케미칼이 지분 40%, 우베흥산과 미쓰비시상사가 60% 투자한 '롯데-우베 인조고무 법인' 등이다.

 

미쓰비시케미칼의 전신 미쓰비시화성공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과 한국에 5곳의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조선인 강제 동원에 관여한 혐의로 전범기업으로 분류된 곳이다. 미쓰이화학 역시 일제강점기 때 미쓰이광산에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전범기업으로 분류된 곳이다.

 

이밖에도 롯데가 일본과 합작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캐논코리아비즈니스, 한국후지필름, 여행사 롯데JTB 등이 있다.

 

롯데 측은 현재 일본 관련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달 16일 열린 롯데 하반기 VCM(사장단 회의)에서 신동빈 회장과 황각규 부회장 등 주요 임원들은 취재진의 일본 불매운동 관련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한 바 있다.

 

직접적인 표현은 안 하고 있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