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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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8월12~18일]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차지한 포르투갈

1415년 8월15일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현재 모로코 땅의 항구 세우타를 점령한 것은 얼핏 보면 흔해 빠진 침략행위처럼 비친다.

하지만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 그것을 살피면 놀라운 데가 있다.

그때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가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어서다.

711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침공해서 한때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이슬람 세력의 분열에 힘입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재정복을 뜻하는 레콘키스타(Reconquista)에 나섰다. 포르투갈은 1249년 완전히 국토를 회복했으나 스페인은 1492년에야 레콘키스타를 완성한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한 것은 북아프리카와 유럽,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서로 상대의 멱살을 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유럽과 아프리카가 가까워 수영에 능한 사람이라면 헤엄쳐 건널 수 있는 거리(12㎞)인 이 지역의 신화와 역사에 새삼 눈길을 돌리게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곳이 헤라클레스가 산을 무너뜨려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 것으로 돼 있다. 그는 양쪽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세웠고 세우타가 바로 그 하나로 알려져 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 듣기에도 엄청난 그곳은 군사적으로나 경제(무역)적으로나 엄청난 요지였다.

그래서 스페인은 레콘키스타를 완성한 지 5년 뒤인 1497년 세우타 부근의 멜리야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 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복잡한 역사적 소용돌이 끝에 세우타는 스페인의 영토가 됐다. 그러나 막상 ‘헤라클레스의 기둥’의 유럽 쪽 스페인 땅에 있는 지브롤터는 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 통에 영국의 차지가 돼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아직도 한니발 시대의 혼란이 남아 있다.

양평(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