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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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한국이 직면한 ‘트럼프 리스크’

韓·美관계가 틀어지기 바라는 / 北·中·러·日에 포위돼 있는 한국 / 좋든 싫든 ‘트럼프 사용법’ 활용 / 현재 사면초가 상태 벗어나야

한국에 거센 외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으로 한·일 갈등은 일제 식민지 지배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세계 경제 1, 2위의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은 전면전으로 비화하면서 한국의 경제·안보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나를 잊지 마’라고 아우성이다. 한국은 지금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한국이 대륙과 대양 세력이 부딪치는 반도에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외교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수시로 직면해왔다. 한국은 지금 또 한 번 창의적인 외교에 국가의 존망을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이 난제를 풀어가려면 우선 상수와 변수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핵무기를 움켜쥔 채 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모순덩어리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시진핑 국가주석, 전쟁할 수 있는 정상 국가를 꿈꾸며 재부상을 노리는 일본과 아베 신조 총리, 미·중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옛 동유럽 맹주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이는 어찌 보면 모두 한국을 압박하는 상수이다. 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흔들리면서 세계 경찰 자리를 팽개치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나마 한국 입장에서 상수가 될 수도,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년 반 동안 우방국,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람보처럼 무차별 총질을 해대고 있다. 그 탄알과 유탄이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 상공을 나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분쟁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궁지에 몰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이나 더 내라고 압박한다. 미국은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뒤 중국을 견제할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 등에 배치하려고 한다. 사드 사태에 따른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아직도 경제적 고통을 받는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은 또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한국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 고위급 인사를 미국에 연쇄적으로 파견해 로비전을 전개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한·일 분쟁에 관해 한국에 다소 우호적인 언급을 했다면 그것은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한국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현 사태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미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은 지금 한·미 관계가 틀어지기를 고대하는 나라들에 포위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 한·미 관계가 악화할수록 한국에 대한 지렛대가 강해지고, 커진다고 여긴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로 한·미 틈새를 벌리려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아베 일본 총리가 거침없이 한국 압살 전략을 들고나오는 것도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아부로 그의 환심을 샀다고 믿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아베는 장사꾼 트럼프가 일본을 버리고 한국을 택하지는 못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일 삼각공조 체제 와해를 핵심 대외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니 한국은 싫든 좋든 ‘와일드카드’인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붙잡아야 한다. 기자는 미국의 한반도 및 아시아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트럼프 사용법’을 물어보았다. 미국 측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자’인 한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에 도움을 줘야 하고, 또 하나는 트럼프가 중국과 북한의 프리즘으로 한국을 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한·일 분쟁에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척하는 이유도 이것이 결국 중국과 북한에 도움이 되고, 그의 대중·대북 정책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이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돈을 마구 퍼줄 수도 없고, 중국을 옥죄는 데 무턱대고 가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이 미국 측 요구를 어느 선에서 절충해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정밀하게 계산하고, 빈틈없는 대미 외교를 펼치는 게 현재의 사면초가 상태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