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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번 시험 끝에 ‘안개 끼지 않는 램프 소재’ 세계 첫 개발 [넘버원 코리아!…기술독립 위해 뛴다]

1회 램프 기술 독립 위해 뛰는 현대모비스 / 車 부품 중 헤드램프 소재 선택 까다로워 / 200도 견뎌야 하고 항습·강성 확보 필수 / 별도 시험장비 제작 등 숱한 시행착오 겪어 / SK이니츠와 제휴… 1년6개월만에 성공 / 일본서 전량 수입하던 소재 국산으로 대체 / 2018년 첨단지능형 헤드램프·엠비전도 공개 / 미래차 관련 신기술 속속 선봬… 업계 주목
“기술력이 한 나라를 먹여 살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경기 김포시의 정밀제어용 감속기 생산 전문기업인 SBB테크를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이 업체는 지금까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 오던 ‘로봇용 하모닉 감속기’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감속기·베어링 생산 전문 업체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계기로 SBB테크처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새삼스럽게 조명을 받고 있다. 일본의 무역보복 사태가 아니더라도 1등만 살아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개발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산업 현장에서는 각고의 노력으로 기술 독립을 이뤄내고 있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세계일보는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기술 독립 기업과 기업인들을 소개한다.

 

현대모비스가 렌티큘러 렌즈를 활용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3D 리어램프. 현대모비스 제공

자동차 업계에서 램프 안개 문제는 오랜 난제였다. 램프 내부의 플라스틱 구성품에서 발생한 가스가 벽면에 흡착돼 뿌옇게 착색되는 현상이다. 이는 고온에서 가스가 발생하는 플라스틱의 물리적 성질에서 기인한다. 업계 관계자는 “(램프 안개 문제가) 미관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배광성능을 떨어뜨려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며 “글로벌 업체들도 해결 방법을 고심하고 있지만 소재 개발 조건이 까다로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헤드램프는 수많은 자동차 부품들 중에서도 특히 소재 선택이 까다롭다. 라이트 열기로 램프 내부 온도가 200도(℃)까지 오르기 때문에 이를 견뎌야 하고, 외부와 온도차이로 생길 수 있는 습기에도 강해야 한다. 또한 강한 진동에도 구성품이 흔들리지 않도록 강성도 확보해야 한다.

지난해 현대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헤드램프. 안개가 끼지 않는 램프 소재가 적용됐다.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 측은 이 같은 다양한 조건을 충족하면서 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이번 신소재 개발을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내부 온도를 200도 넘게 유지하는 장비가 없어 별도 시험 장비를 제작했다. 소재에 첨가물들을 바꿔가며 수백번 넘게 시험을 거듭했다. 노력은 보답받았다.

 

지난해 6월 현대모비스는 세계 최초로 안개가 끼지 않는 램프 소재를 개발했다. 국내 소재업체인 SK이니츠와 손을 잡고 소재개발에 착수한 지 1년6개월 만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해당 소재를 국산화하고, 국내외 공동 특허도 출원했다.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에서 신소재 개발에 참여한 섀시·의장분석팀의 김종수 책임연구원은 “신소재 개발 후 헤드램프에 쓰이는 일본산 플라스틱 소재를 모두 국산 제품으로 바꿨다”며 “개발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문의가 많이 오고 있어 조만간 수출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첨단운전자지원기술(ADAS)과 함께 첨단 지능형 헤드램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존 지능형 헤드램프는 전방의 카메라 센서로만 차량을 인식해 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뒤에서 추월하는 차량이나 빠르게 커브길을 선회하는 차량 등 상대 차량의 급격한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모비스 측은 “전방 카메라 센서뿐 아니라 레이더, 내비게이션, 조향각센서 등에서 정보를 추가적으로 수집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더욱 빛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며 “후측방 사각지대 감지장치(BCW)로 후측방에서 추월하는 차량 정보를, 내비게이션으로 고속도로와 국도 등의 차로 정보를, 조향각 센서로 커브길의 곡률 정보를 파악해 상대 차량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제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가 렌티큘러 렌즈를 활용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3D 리어램프.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 전시회 ‘CES2019’에서 미래 도심 자율주행 콘셉트(개념)인 ‘엠비전’(M.VISION)을 공개했다. 엠비전은 차량 전후좌우에 장착된 램프를 통해 자율주행차가 다른 차량, 또는 보행자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가령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를 인식해 램프 불빛을 통해 노면에 횡단보도 이미지를 제공하거나 물웅덩이를 우회하도록 화살표를 표시해 주는 식이다. 램프를 차량과 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이다.

미래차 시대에는 램프가 빛을 보다 정밀하게 조절해 자율주행차의 상태나 의사 전달을 외부에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미래차 시대를 맞아 램프의 패러다임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며 “미래차 시대의 램프는 ‘어떻게 더 안전하게 시야를 확보하면서도 상대 운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램프는 강한 빛을 조절해 안정적인 시야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기술집약적 핵심부품이다. 업계 관계자는 “램프 시장은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은 탓에 신규업체들이 뛰어들기 어렵다”며 “오랜 기간 기술력을 축적한 일본과 유럽의 6∼7개 업체들이 80% 가까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2008년 램프 사업에 뛰어든 후발주자인 현대모비스는 지난 10여년 동안 수많은 램프 기술들을 빠르게 내재화해 최근 세계 최초 램프 기술들을 속속 선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그동안 램프는 빛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광학기술의 집약체로서 유럽과 일본 등 선진 램프업체들이 기술발전을 주도해왔다”며 “하지만 앞으로 램프 시장의 대세는 상대 차량을 감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센서 등의 인지기술을 갖춘 현대모비스에 더 큰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