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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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세상] 징용과 강제동원의 차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같은 우익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합법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가 역사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한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난주 취재차 방문한 일본에서 만난 현지 지식인들은 한·일 갈등을 촉발한 아베 정부의 속내를 이렇게 분석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벌인 중국 침략은 잘못했다고 여기면서도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에는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게 우익의 사고라고 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조선 통치는 한국이 일본에 고마워할 일”로 여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인식을 확대하기 위해 절치부심 칼을 간 인물이다.

일본의 논리는 대체로 궁색하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반영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문구만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다. 다만 1991년 외무성 조약국장이 “양국이 포기한 것은 외교보호권이며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했지만 말을 바꿔 다 해결됐다고 입장을 통일한 점에서는 치밀하다.

강제동원 문제만 해도 아베 정부는 1938년부터 국가총동원법하에 이뤄진 ‘(기업의) 모집, (관의) 알선, 징용’ 중 징용만을 국가 책임으로 인정한다. 이 부분에서는 치밀한 논리를 내세운다. 강제로 끌고 간 것은 맞지만 ‘전시 징용’은 국제법상 합법이라며 강제노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현미 정치부 기자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선 우리도 면밀하게 대응해야 함에도 용어 사용부터 허점이 있다. 현재 정치권과 많은 언론들은 일제에 의한 강제노동을 ‘강제징용’이라 언급하고 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학계 일부에서는 분통을 터트리며 바른 언어 사용을 촉구하고 있다. 징용의 사전적 의미로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베 정부가 강제노동에 합법의 틀을 씌우고 피해자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 남상구 소장은 “징용이라는 용어가 1944년 이후 일제의 국민징용령에 따른 동원만을 의미하거나 모집과 알선은 강제가 아니라는 오해를 초래할 소지가 있어 강제동원이라고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조직과 관련 법에는 강제동원이라고 제대로 명시해놓고도 실상에선 일본 정부의 용어를 따라쓰는 실정이다.

모집과 알선이 일종의 ‘취직’인 만큼 강제노동이 아니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연구자들의 자료를 보면 미쓰비시 같은 전범기업들은 후한 임금과 복지를 보장하겠다고 조선인을 속이거나, 일제 관료와 함께 집에 들이닥쳐 조선 청년을 강제로 끌고 갔다. 그렇게 데려간 노역 현장에서 노예로 삼았다. 조선인을 나무에 매달아 때리는 등 모질게 고문했다. 연금저축을 해주겠다는 이유로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위자료 지급 소송을 건 이유다.

합법의 틀에서는 도저히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합법을 주장하며 절치부심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아베 정부에 명징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도 용어부터 바로 사용해야 한다. 강제징용이 아니라 강제동원이다.

 

이현미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