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정부가 꺼내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는 단기적으로는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부를 것이란 게 업계와 시장의 시각이다. 가뜩이나 경기악화로 악전고투 중인 건설업계에서는 정부 규제로 더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우선 분양가 상한제 도입으로 최근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였던 서울 아파트 가격은 다시 안정세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서 2007년 분양가 상한제가 민간·공공택지를 포함해 전국에서 처음 도입됐을 때 당시 정부는 전국 아파트 분양가가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토교통부는 “현 시세의 70∼80% 수준까지 분양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양한 지역의 아파트 단지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라고 강조했다.
시세가 높은 서울 강남권, 특히 재건축 단지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하면 주변 시세보다 낙폭이 더 커질 수 있다. 정부와 업계에선 최대 현 시세의 절반가량까지 분양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한다.
장기적인 집값 안정효과에 대한 판단은 갈린다. 특히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서울 강남권 등의 재건축·재개발 단지 등을 타깃으로 하면서 이에 따른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점도 우려된다.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은 이윤이 감소한 만큼 사업 추진을 미룰 확률이 높다. 한 재건축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원 입장에서는 분담금을 더 내서 새 아파트를 짓느니 보유 주택을 팔고 옆에 있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정부의 이번 발표는 내년 총선 때까지는 집값 올라가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또 서울에서 신규 (아파트) 물량이 나오지 않는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 내 신규 아파트 용지가 사실상 재건축·재개발 용지밖에 없다는 것도 정부가 간과한 부분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울로 들어오려는 수요가 계속되는 한 2∼3년 뒤에는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정부는 수도권 3기 신도시 등 30만가구 주택 공급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신도시 주택은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는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아파트 매매 물량을 푸는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대한 부담을 줄여 시장에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택경기 악화로 고전 중인 건설업계는 이번 조치로 업황이 더 어려워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재건축·재개발 물량 감소로 서울 사업이 어려워진 만큼 공사물량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지방 분양에 집중할 것”이라며 “지방 주택시장 과잉 우려가 해소가 안 됐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세종=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