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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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제3세력화 노리지만 대선주자급 구심점 없으면 ‘모래성’ [황용호의 一筆揮之]

평화당 10명 집단탈당 파장/ 제3교섭단체 4차례 생겼지만/ 대권주자 없는 경우 수명 짧아/ 국민의당 출신 옛 동지들 규합/ 한국당 비박 일부 영입설 불구/ 참여 불투명 … 파급력 미지수
유성엽 원내대표 등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민주평화당 소속 유성엽 의원을 비롯한 의원 10명의 집단탈당은 ‘제3지대 신당’ 창당은 물론 보수대통합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2월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 유승민 의원이 주도하는 바른정당 간 통합에 반발해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 호남지역 출신 14명은 국민의당을 나와 딴살림을 차린 곳이 민주평화당이다. 그런 민주평화당이 창당 1년6개월 만에 또 갈라선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12일 오전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의 탈당 기자회견이 끝난 후 정론관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탈당을 선언한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사분오열되고 지리멸렬한 제3세력들을 다시 튼튼하고 건강하게 결집시키면서 대안신당 건설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는 과거 국민의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옛 동지들을 규합해 정치결사체를 ‘복원’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 내 호남지역 의원, 평화당 잔류 의원, 국민의당 출신 무소속 손금주, 이용호 의원 등이 참여해 제3원내정당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 집단 탈당파들이 그리는 신당의 밑그림이다.

일부는 ‘도로 국민의당’ ‘호남 자민련’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자유한국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일부를 끌어들여 영·호남 화합의 정치를 도모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바른미래당 내 호남 출신 의원들이 손학규 대표 등과 집단탈당해 이들과 뭉쳐 제3지대 신당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현재 소속 의원 28명으로 제3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손 대표 그룹과 안철수·유승민계 의원 간 끊임없는 갈등으로 분당은 시간문제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손 대표가 당초 이날 안철수·유승민계 의원의 퇴진 요구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준비해온 ‘손학규 선언’의 발표를 1주일가량 늦추기로 한 것은 이날 평화당 의원들의 집단탈당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이들의 탈당이 정치권의 판을 흔들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이날 평화당을 탈당, 내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경진 의원은 독자행보를 걷겠다는 입장이다. 무소속 손·이 의원의 신당참여도 불투명하다.

집단 탈당후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평화당 제7차 최고위원·국회의원·상임고문·후원회장·전당대회의장 연석회의에서 정동영 대표가 심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 대표는 그해 4월 실시한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해 20년 만에 제3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창당 2년 만인 2018년 2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정당과 통합하며 간판을 내렸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 당명으로 당선된 의원들은 현재 뿔뿔이 흩어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후 제3원내교섭단체는 그동안 신민주공화당(13대), 통일국민당(14대), 자민련(15대), 국민의당(20대) 네 차례 등장했지만 수명이 길지 못했다. 제3원내교섭단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제3원내교섭단체 정당은 설 땅이 없다고 진단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자민련을 제외하곤 제3원내세력이 다음 총선까지 가지 못했다”며 “대선주자급 지도자가 없는 정당은 버티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당이 정책이나 이념, 철학보다는 대선에 출마할 인물 중심으로 모여 형성되고 있다”며 “대선주자가 정계를 떠나면 그가 소속된 정당은 흐지부지해지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본격화할 듯하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