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으로 한국에 복무하는 도중 한국인 여성과 사귀게 된 미국인 부사관이 있다. 짧은 연애 끝에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귀국 후 남편이 받은 보직은 육군의 신병을 뽑는 모병관. 그리고 그가 수행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뜻밖에도 자신의 아내를 육군 병사로 맞아들인 일이었다. 지금은 부부가 나란히 미 육군의 부사관 및 병사로서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살고 있다.
◆주한미군 부사관과 평범한 한국 여성, 부부가 되다
이 동화 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미 매사추세츠주 지역에서 육군 모병관으로 일하는 조슈아 미첼 중사, 그리고 부인인 은지(Eunjee) 미첼 상병이다. 14일 미 육군에 따르면 최근 육군 홈페이지는 이 부부가 겪은 독특한 사연을 취재해 사진과 함께 ‘육군 모병관이 자기 아내를 신병으로 뽑다(Soldier recruits wife to join Army)’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미첼 중사가 주한미군에 복무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우연히 온라인 공간에서 ‘은지’라는 이름의 한국인 여성과 알게 됐다. 한동안 메신저 등으로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고 해가 바뀌고 난 후 첫날인 1월1일 드디어 두근거리는 대면 만남을 가졌다.
그때부턴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둘은 결혼식을 올렸고 은지씨는 ‘은지 미첼’이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본국에 돌아온 미첼 중사가 새로 받은 보직은 육군에 입대할 신병을 뽑는 모병관. 끊임없이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때로는 퇴근 후에도 전화 상담 등을 해야 하는 피곤한 자리였다.
◆육군 입대 결심한 그녀, 남편을 떠나 훈련소로 가다
은지 미첼은 곁에서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보며 미 육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부가 함께 승용차를 사러 갔을 때 남편이 차 딜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를 설득해 육군 신병에 지원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하루는 은지 미첼처럼 한국에서 온 여성이 남편한테 모병 상담을 요청했다. 은지 미첼도 옆에 있었다. 그 한국계 여성은 “군인이 되면 영어 실력이 느나요”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나요” 등을 물었다. 이 질문은 은지 미첼 본인이 던지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본인도 육군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힌 은지 미첼은 방법을 찾아 나섰다. 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남편이자 모병관인 미첼 중사가 그녀를 뽑기만 하면 됐다. 미첼 중사는 미 육군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지가 저와 어울리며 육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알고 있어어요. 그런데 진짜로 육군에 입대하는 결정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결국 제가 직접 그녀의 입대지원서를 작성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이민 후 부부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던 은지 미첼은 처음 남편 곁을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육군 신병훈련소에서 10주일 동안 기본군사훈련(Basic Combat Training)을 받았다.
◆동기생들한테 외쳤다, "여기 제 모병관이 왔어요!"
모든 훈련 과정을 이수하던 날 미첼 중사가 부대를 찾았다.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해줄 작정이었으나 은지 미첼이 먼저 알아보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196cm의 장신에 거구인 미첼 중사가 아내 눈에 안 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함께 훈련을 이수한 동기생들한테 남편을 소개하며 은지 미첼은 이렇게 외쳤다. “저를 뽑은 모병관이 여기에 와 계세요(My recruiter is here).”
이렇게 해서 부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남편 미첼 중사는 여전히 육군 모병관이고, 아내 미첼 상병은 육군 예비부대의 군수물자 담당자가 되었다. 은지 미첼 상병은 미 육군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병훈련소에서 보낸 10주일은 남편을 더 잘 알고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어요. 결혼 첫해 저는 남편이 왜 집안에서 군화를 벗지 않는지 등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오해를 하곤 했거든요. 이제는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