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AI·VR기술 더해 짜릿… 빌딩숲 ‘운동의 자유’ 얻다 [S 스토리]

입력 : 2019-08-17 16:00:23
수정 : 2023-12-10 15:56:46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첨단기술 날개 달고 / 카메라로 사용자 동작 감지해 실력 판단 / 난이도 자동 제어 누구나 팽팽한 승부 / 승마·사격 땐 몸의 반동까지 생생 체험 / 종목 늘리며 폭풍성장 / ‘야외 체육’ 제약 많은 국내 실정에 맞아 / 시장 규모 5조원대… 10년 새 50배 성장 / “정확한 실태 파악·관리 체계 구축해야”

회사원 손모(30)씨는 전보다 회식이 즐거워졌다. 늦게까지 술만 마시는 대신 회사 동료들과 야구를 하러 가기 때문이다. 1차로 밥 먹고 2차로 스크린 야구장에 가서 동료들과 번갈아가며 타석에 서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난다. 공을 칠 때의 타격감도 좋고 백스크린이 조성하는 현장감이 만족스럽다. 좌완이나 구질 등 상대 투수의 특징까지 선택할 수 있어 현실감이 높다. 초보자도 잠깐 배우면 공을 때려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손씨는 “한 명씩 돌아가며 치니까 더욱 주목받고 빨리 친해져 동료들과 단합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재밌어서 회식 때마다 스크린 야구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옷이 땀에 젖거나 조금 흐려진다 싶으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요즘, 야외활동 계획을 잡기 애매할 때가 많다. 실내에서 스크린을 통해 실제 경기를 하는 듯 기분을 낼 수 있는 스크린 스포츠 시설이 인기다.

 

테니스 테니스도 1인용과 2인 대결용 모두 선택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공을 쏘기 때문에 랠리가 이어지며 실제로 경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골프존 제공

2000년대 초반 급성장한 스크린 골프를 비롯해 현재 스크린으로 즐길 수 있는 종목은 야구, 축구, 양궁, 테니스, 승마, 사격, 컬링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골프를 제외하고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종목은 야구로 스트라이크존, 리얼야구존, 레전드히어로즈존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도 다수다.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한 팀을 선택할 수 있고, 난이도도 자신의 수준에 맞게 고를 수 있다. 같은 단계여도 구속과 구질이 미세하게 변화해 재미를 배가한다. 처음 타석에 서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당황할 수 있으나 공을 맞히고 싶은 욕구가 발동해 어느새 화면을 응시하며 타이밍을 맞추려 눈을 부릅뜨게 된다. 눈 깜짝할 새 몸 앞으로 날아오는 공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잠시, 벌써 타격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 곳곳에 있는 스크린 야구장에는 일반 학생이나 연인도 오지만, 손씨처럼 회사원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도 많다.

 

볼링 스크린 볼링은 사람이 공을 던지면 스크린 속에 그 궤적대로 공이 굴러가며 핀을 쓰러뜨린다. 스트라이크, 스페어 등 일반 볼링규칙이 똑같이 적용된다. 박유빈 기자

스크린 스포츠 시장이 커진 이유는 단순히 재미뿐 아니라 야외체육을 쉽게 하기 힘든 국내 여건 탓도 크다. 골프처럼 넓은 공간이 필요한 종목은 멀리까지 나가야 즐길 수 있고, 승마나 사격 등 대중이 접근하기 쉽지 않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이 큰 탓에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스크린 스포츠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대구에서 스크린 승마장을 운영 중인 송정선씨는 “실제 말은 30분 타는 데 5만원을 내야 하고 아무 때나 승마장에 갈 수도 없는데, 여기서는 원하는 시간에 말을 탈 수 있어서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류성옥 고려대 체육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땅이 넓고 골프장이 주변에 가까이 있어서 스크린 골프가 발달하지 않았다”면서 “여가 이론에서 말하는 거리나 시간, 경제성 등 여가활동 참여를 방해하는 ‘제약 요소’를 스크린 스포츠가 줄였다”고 풀이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발표한 ‘2017 체육백서’에 따르면 스크린 스포츠 전체 시장은 1조2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스크린 스포츠 업계에서는 더 크게 잡는다. 2007년 100억원대 수준이던 국내 시장 규모가 2013년 1조5000억원대로 성장, 2017년에는 5조원대까지 10년 새 50배 성장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순히 시장 수요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관련 기술도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카메라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운동 자세를 평가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스크린이나 가상현실(VR) 스포츠와 관련해 국내 특허출원된 IT기술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년간 357건으로, 이전 3년간(2013~2015년) 출원 건수 211건보다 약 69% 증가했다.

 

정교해진 카메라나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에 의해 스크린 스포츠의 생생함은 더 강해졌다. 스크린 골프의 경우 실제 경기장에 온 것 같은 풍경을 구현해내는 것은 물론 클럽별로 거리와 궤도까지 분석할 수 있다. 카카오VX는 스크린 스포츠 분야에서 후발주자이지만 음성과 동작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사용자 편의와 게임의 재미를 높였다. 다른 종목들도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스크린 테니스는 인공지능 기술로 카메라가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사용자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공 발사기와 스크린 영사 시스템을 제어한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실제 테니스장에서 랠리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승마나 사격도 마찬가지로 말의 보법을 그대로 살리고 총을 쏠 때 몸에 전달되는 반동까지 신경 썼다.

 

실제 경기로는 누릴 수 없는 스크린 스포츠만의 또 다른 매력은 시공간 제약을 뛰어넘는 원격 대결이다. 대다수 종목에서 1인 모드와 대결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상대방과 같이 있지 않아도 동시간에 접속만 돼 있으면 대결이 가능하다. 서울에 있는 A와 부산에 있는 B가 동시에 스크린을 통해 승마경주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스크린 낚시의 경우 대결 모드 선택 시 바로 상대방과 자신이 잡은 물고기의 총무게가 화면에 표시돼 경쟁심을 더 자극한다. 같이 맞붙어 경쟁하는 재미 때문일까. 친구나 가족, 동호회 차원에서 스크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친구와 스크린 야구를 하러 온 이모(26)씨는 “모여서 마땅히 갈 데 없을 때 인원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다”며 “처음 스크린 야구를 해본 게 겨울인데, 날씨 때문에 실내로 왔다가 재밌어서 자주 오게 됐다”고 말했다.

 

사격 스크린 사격은 단순한 과녁 맞히기부터 밀리터리나 좀비 등 다양한 버전을 선택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실제 사격을 접하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킬링스페이스 제공

스크린 스포츠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에서도 디지털 첨단기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아날로그적 관계’라고 말한다. 레전드히어로즈존 김강열 사장은 “많은 구매활동이 인터넷으로 해결되니까 바깥활동이 줄어 ‘체험경제’가 새로운 화두가 됐다”며 “조부모와 손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놀이문화를 전파해 인간관계 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지향점을 밝혔다. 리얼야구존 등 다른 스크린 스포츠 브랜드도 공통적으로 “모임이나 회식의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만 스크린 스포츠 시장이 단발성 인기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해당 종목을 향한 관심 제고까지 이어지려면 관리감독에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크린 스포츠 분야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실태 조사나 시장 규모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스크린 스포츠 관련 업계에서는 수치나 근거가 불분명한 자료로 시장 규모를 추산할 뿐이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