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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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고백 진심일까 [명욱의 술 인문학]

술은 추억 속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술을 마시고 실수도 하고 고백도 했으며,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해본 아픈 추억도 있다. 멀쩡한 상태에서는 고백도, 옛 연인에게 전화도 하지 않는다는 것. 오직 술에 취해야만 무엇인가 용기가 생긴다. 도대체 술은 무엇이길래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올까?

 

 

흥미롭게도 알코올은 흥분제가 아닌 진정제 또는 억제제이다.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디 엔자이어티 솔루션’이라는 문헌에 따르면 알코올은 바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 세로토닌의 대표적인 역할은 뇌의 호르몬 콘트롤이다. 바로 행복전달물질인 도파민과 흥분 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 그리고 신체적 아픔을 감쇄해주는 엔도르핀이 그 대상이다. 한마디로 세로토닌이 집안의 규율을 이끌어 나가는 부모이라면, 아드레날린·도파민·엔도르핀 등은 그 관리하에 있는 자녀들인 것이다.

여기서 알코올이 들어가면 세로토닌의 역할은 작아지고, 결국 행복과 흥분과 아픔을 감쇠해주는 호르몬이 증가된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도파민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아드레날린으로 흥분과 용기가 동시에 나며, 엔도르핀의 역할로 아픈 곳도 안 아프게 느껴진다. 덕분에 우리는 음주를 통해 용기를 내서 고백하기도 하고,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도 더욱 커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술에 용기를 얻어 사랑을 고백하거나 진심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취중고백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더욱 솔직해지는 것이기에 다 믿으면 되는 것일까? 실은 이 취중진담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성이다. 이성을 컨트롤하는 세로토닌의 역할이 작아지기에 감성만 앞세우는 호르몬만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감정적으로는 100% 사랑할 수는 있어도, 이성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전화 해서 다시 사귀자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감정만 솔직해진 것일 뿐, 다양한 상황과 입장을 생각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데 순간적인 감정에 의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 믿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실수로 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멀쩡한 정신에 다시 연락이 온다면 그때 재고해도 충분히 늦지 않다.

신기하게도 우리 인체는 과음으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 바로 음주가 졸음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우리 뇌에는 또 GABA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GABA가 작용하는 부위(GABA-A 수용체)에 알코올이 결합하면, 각성 작용과 신경세포 활동이 억제되고, 이때 수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즉, 알코올은 행복과 흥분, 솔직함과 감성적 감정을 작용시키지만 결국은 졸음을 유발해서 금방 잠들게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신도 인간이 과음하고 실수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고 생각한 듯하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