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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다리 타고 올라간 딸… ‘공정’ 외치던 조국에 배신감 [이슈 속으로]

2030은 왜 등돌렸나 / 과거 ‘조국의 입’이 부메랑이 된 현실 / 폴리페서 비판 ‘앙가주망’으로 포장 / 장학금 경제상태 기준 주장하더니 / 정작 딸은 유급하고도 6번이나 받아 /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감도 더 커” / 조 후보자 법무장관 임명 반대 나서 / 20대 68% 최다… 30대도 49% 차지 / “文대통령·여당 지지 철회는 아니다”

“고시 대비용 조적조(조국 후보자의 적은 조국 후보자) 사례집 공동구매하실 분 연락주세요.”

“조국 후보자 법무장관 임명 찬반토론합니다. 찬성 측 대표 조국, 반대 측 대표 조국입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촛불 대신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SNU Life)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스누라이프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잇따랐다. 20, 30대가 조 후보자에 드러낸 실망감은 온라인을 거쳐 오프라인상으로도 확대됐다. 28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 공터 ‘아크로’에는 서울대 학생 700여명(이하 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지난 23일 서울대생 500여명이 모인 뒤 두 번째 촛불집회였다. 이들은 “법무장관 자격 없다”, “학생들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 23일엔 조 후보자 딸 조모(28)씨가 졸업한 고려대 소속 재학생·졸업생 500여명도 고려대 안암캠퍼스 본관 앞 중앙광장에서 조씨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20∼30대 민주당 지지자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크다”

 

조 후보자에 대한 20∼30대의 반발 여론이 심상치 않다. 중앙일보가 지난 23~24일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 후보자 법무장관 임명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는 20대 비율은 68.6%(찬성 16.2%)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30대도 법무장관 임명 반대가 49.1%(찬성 40.1%)로 반대가 우세했다.

20∼30대의 실망은 어디서 왔을까. 2016년 ‘국정농단’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20∼30대 5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조 후보자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를 졸업해 금융공기업 취직을 준비 중인 김모(29)씨는 “조 후보자는 진보적 학자로 시민단체나 학교에서 ‘상류층이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사다리를 서민에게도 나눠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그런데 조 후보자 딸이 아빠란 사다리를 타고 의학전문대학원까지 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어 “평범한 부모, 학생들은 의학논문 작성이나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의학논문의 제1저자 이름까지 올렸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5년차 직장인 최모(34)씨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상류층을 비판하는 개혁적인 말들을 해왔는데 정작 본인 딸은 그런 식으로 ‘스펙’을 쌓았다”며 “조 후보자가 말했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조 후보자에 대한 실망을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분노는 조 후보자의 위선 등에 대한 분노일 뿐 민주당과 현 정권의 지지철회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를 졸업해 한 병원 전문의로 근무하는 박모(33)씨는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조 후보자 자녀에 대해 얼마나 알았겠느냐”며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론 조 후보자를 존경했는데, 그만큼 배신감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조적조’부터 ‘조로남불’까지… 과거 조국의 SNS·발언 논란

‘조국의 적은 조국이다.’ 20∼30대를 중심으로 조 후보자의 실망이 커지며 나오는 말이다. 이외에도 ‘조로남불’(조 후보자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구구절절 스스로를 호통치는 조국은 이 시대의 참 현자’ 등 과거 조 후보자가 SNS 등을 통해 했던 말들이 회자하며 조 후보자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논란이 되는 조 후보자의 트위터 발언을 모아놓은 페이스북 페이지도 등장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페이스북 캡처

조 후보자는 과거 트위터 글 등을 통해 교수의 공직출마(폴리페서)는 학생의 학습권이나 다른 동료 교수 업무에 지장을 주는 만큼 공직에 관심 있으면 교수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강의실을 오랜 시간 비운 데 이어 법무부 장관 후보자까지 지명되자 불만을 가진 서울대생 중심으로 교수직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조 후보자는 자신이 과거 비판한 폴리페서는 ‘선출직’에 대한 것이고, 자신과 같은 ‘임명직’은 다를 뿐 아니라 지식인의 앙가주망(사회 참여)으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에 서울대 로스쿨생들의 비공개 커뮤니티 ‘로스누’엔 “조 교수님은 좌파의 우병우”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페이스북 캡처

2012년엔 논문표절 등 유명인들의 그릇된 연구윤리 문제가 불거졌다. 조 후보자는 그해 4월19일 트위터에 “논문의 기본은 갖춰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잠을 줄이며 한 자 한 자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있다”고 적었고, 젊은층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조 후보자는 그의 딸 조씨가 2008년 한영외고 2학년 시절, 2주간 인턴 후 의학논문 1저자로 기재돼 ‘스펙 밀어주기’ 의혹을 받는다.

 

2012년 4월15일엔 장학금 지급 기준에 대한 발언도 있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중심에서 경제상태를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딸 조씨는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유급을 2차례 당하고 2016년부터 3년간 한 학기에 200만원씩 총 6번의 장학금을 받았다. 조 후보자의 재산도 수십억대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2012년 3월2일 트위터를 통해 “10대90 사회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가재와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란 글을 올렸다. 이에 20∼30대 사이에선 조 후보자의 딸이 용이고, 다른 학생들은 평생 가재로 살라는 의미였느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신문 기고문, 저서 등을 통해 특목고 폐지를 외친 조 후보자가 정작 본인의 두 자녀는 특목고를 보내 ‘스펙 밀어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도 젊은층은 분노했다.

◆“정치적 이념으로 보지 말아 달라… 공정이란 가치를 우선한 것”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청년전태일 주최로 열린 '조국 후보에게 이질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2030청년들과 조국 후보자와의 공개 대담 제안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조 후보자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 20∼30대는 자신들의 행동이 정치적 행위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표현일 뿐 기성세대가 이념논리로 자신들의 행위를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 3년차 이모(33)씨는 “기성세대처럼 정치적 이념이 진보라서 무조건 진보를 지지하고, 보수라서 막무가내로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집회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활동일 뿐 진보와 보수의 틀로 가두는 것은 기성세대의 잣대”라고 말했다. 지방 소재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해 변호사로 활동 중인 김모(34)씨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자유롭다”며 “단지 공정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30대의 실망을 정치적 논리로 보기보다는 조 후보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0~30대는 이념논리보다는 가치 위주로 움직인다”며 “서울대 집회를 비난하는 분들은 젊은이들이 (이념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도 “20∼30대는 중요한 가치가 공정과 정의”라며 “기회의 형평성 문제에 민감하고 스펙 경쟁에 시달려 게임의 룰이 무너지면 굉장히 분노한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