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예고됐던 홍콩 민주화 시위가 ‘시민 안전’을 이유로 취소됐다. 중국·홍콩 정부와 홍콩 시민들 간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던 가운데 내려진 이번 결정으로 양측 간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는 일단 넘겼다는 평가다.
30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31일로 예고했던 대규모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를 취소했다. 민간인권전선은 31일 오후 홍콩 도심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집회를 연 뒤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건물 앞까지 행진할 계획이었다. 민간인권전선 측은 취소 이유에 대해 “우리는 시위 참가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인권전선은 지난 6월9일 홍콩 시민 100만명이 모인 송환법 반대 집회부터 지난 18일 170만명이 참가한 빅토리아 공원 집회까지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단체다.
앞서 홍콩 경찰은 지난 29일 폭력 시위로 인한 충돌과 부상자 발생을 우려한다며 31일 집회와 시위를 모두 불허했다. 경찰이 행진을 불허한 적은 있으나 집회와 행진 모두를 불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경찰의 억압적 집회 금지 조치가 더 큰 혼란과 충돌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던 가운데 시위 주최인 민간인권전선이 시위를 전격 취소한 것이다.
이번 시위 취소는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비서장 체포 등 시위대를 향해 내외부로 증가하는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데모시스토당은 30일 트위터를 통해 “조슈아 웡 비서장이 오늘 아침 7시30분 무렵 체포됐다”며 “그는 밝은 시간대에 길거리에서 미니밴에 강제로 밀어 넣어졌으며, 우리 변호사가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데모시스토당은 조슈아 웡이 완차이에 있는 경찰본부로 끌려갔으며, 3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슈아 웡 비서장은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우산 혁명’의 주역이자,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 전날인 29일에는 ‘홍콩 독립’을 주장하다 지난해 강제 해산된 홍콩민족당의 창립자 앤디 찬이 폭동과 경찰관 공격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이에 더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중국 선전에 집결한 무장경찰의 시위 진압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시위대 역할을 하는 경찰을 향해 물대포 차량 두 대가 물을 뿜는 장면이 담겼다. 이는 시위가 과격 양상을 띨 경우 강경 진압도 불사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됐다.
시위가 취소되며 고조되던 중국·홍콩 정부와 홍콩 시민들 간 갈등은 잠깐의 휴지기를 맞았지만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못한 만큼 불씨는 여전하다.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학부 산하 아시아경쟁력연구소의 탄키갑 교수 등 3명은 전날 한 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치솟는 생활비, 중국 본토인과의 취업 경쟁 등이 홍콩 젊은이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이것이 시위의 주된 배경”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의 지니계수는 1981년 0.451에서 2016년 세계 최고 수준인 0.539로 치솟았다.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우면 소득 분배가 평등하게,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하게 이뤄진다는 뜻으로, 통상 0.4가 넘으면 그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본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