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사한 모자 탈북민… 물질적 지원과 함께 진정성 있는 관심 필요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던 한(42·여)씨와 그의 아들(6)은 지난 7월31일 누수 현상을 점검하러 나온 수도 관계자가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신고하면서 처음 발견됐다. 경찰은 한씨 모자가 2개월 전쯤에 이미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집 안에는 음식은 고춧가루가 전부였고, 한씨의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이 때문에 모자가 아사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에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탈북민 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는 부랴부랴 회의를 열고 지난 2일 ‘탈북민 생활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김 장례위원은 “이곳 빈소에는 그동안 2000여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이 다녀갔지만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나 (박원순) 서울시장, (박준희) 관악구청장 등 정부나 기관을 대표해서 어느 한 분도 나오지 않았다”며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래도 책임 있는 사람들이 직접 오거나 조화라도 보낼 줄 알았는데 너무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또 “말로만 탈북자 정책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지 현재 정부는 우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체감이 든다”며 “정부가 진정성 있는 대책으로 탈북자들을 돌아봐 주길 바란다. 돈이나 지원정책보다 관심이 더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한씨 모자 애도시민장례위원회는 오는 21일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시민장례식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남북하나재단은 지난달 27일 “한씨 모자 사망은 비통하고 안타까운 사건이며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며 “탈북민 단체가 중심이 된 비상대책위와 협의해 신속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이틀 뒤인 29일 “재단의 적극적인 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례위가 시민장례식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더는 장례절차 협의가 무의미해졌다고 판단, 장례 이후 시신 관리 책임이 있는 관악구청과 협의해 탈북민 전용 봉안당에 유골을 정중히 모시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편견에 이중고”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 숫자는 3만700명이다. 특히 이 가운데 한부모가정이나 장애인, 노령층 등 취약계층은 약 10%인 2000∼3000명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위기상황에 처한 가정을 발견하고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대기근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탈북민 숫자는 급증했다. 1999년 1년간 남한으로 들어온 탈북민 수가 처음 100명을 넘었고, 2002년에는 연간 1142명이 남한으로 왔다. 이후 해마다 1000여명의 탈북민이 남한행을 택했다. 본격적인 탈북민 정착지원 제도가 시작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여전히 남한 사회의 주변부에 이방인으로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탈북민 정착지원을 담당하는 남북하나재단의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이들은 차별과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탈북민의 평균 가구원 수는 2.4명, 가구 내 총소득은 2834만원이다. 올해 기준 2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2092만원임을 고려하면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탈북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과금을 연체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9.2%로 나타났다. 또 교육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9.1%), 병원비가 부담돼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9.0%), 타의에 의한 실업 경험(4.0%) 등의 순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들이 남한생활에 불만족한 이유 상위 5가지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14.9%)도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27.4%),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18.6%), 남한 사회의 차별·편견(18.3%), 남한 사회에 적응이 어렵다(3.8%) 등이었다.
이들이 무조건적인 지원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남한생활을 위해 필요한 1순위 지원으로는 취업·창업지원(24.9%)이 가장 많았다. 스스로 자립할 의지는 강하다는 의미다. 이어 의료지원(17.8%), 교육(13.7%), 소득(12.3%), 주택(12.2%) 등의 순으로 지원을 원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사회적 시스템을 정비해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양경석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는 9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씨 모자의 사망은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전형적인 사회적 타살”이라며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법과 제도가 정비됐다지만 또다시 사각지대에서 비극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양 이사는 그러면서 “탈북민은 탈북과정에서 지옥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도 남한에 가면 그것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들어오는데 남한에 와서 겪게 되는 차별과 편견에 상처받고 결국 사회에서 멀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접 지원 늘리고 南의 인식개선 병행해야”
“탈북민에 대한 전문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이런 지원엔 남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강동완(사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부산하나센터장)는 9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5월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한모씨 모자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탈북민의 정착지원 제도의 대대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역사회에서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남북하나재단 산하 하나센터장을 맡았던 강 교수는 “탈북민의 정착지원은 생활의 영역인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의 주력 업무에 가깝다”며 “북한과의 교류협력이라는 명분 때문에 북한의 눈치를 보는 통일부가 담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업무이기 때문에 부처 간의 업무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당장 부처 간 업무조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하나재단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북민을 만나는 최일선에는 전문상담사들이 있는데, 전국 25개 지역에 배치된 전문상담사가 69명에 불과하다”며 “3만명이 넘는 탈북민 숫자를 고려하면 상담사 1명이 443명의 탈북민을 담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원래 상담사가 100여명이었는데 통일부가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인력으로는 전화가 오면 겨우 상담을 해주는 정도인데, 과연 먼저 다가가는 서비스나 취약계층 발굴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착지원의 틀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 3만명의 탈북자 가운데 70%가 여성이고, 이 가운데 또 상당수는 중국을 거쳐온 사람”이라며 “많은 탈북 여성이 중국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자식을 낳고 혼자 한국에 들어와 두고 온 자식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그러면서 “정착지원은 이런 세세한 부분을 신경 써 줘야 하는데 탈북민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만 분류해 지원하다 보니 세밀한 부분이 잘 보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씨 모자의 경우도 미취학 아동을 맡길 곳이 없었던 어려움을 정부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남북한 통합사업의 하나로 탈북민의 지원과 아울러 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인식개선 사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