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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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안희정 유죄 확정, ‘권력형 성범죄’ 근절 계기 되길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는 어제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권후보 경선에까지 나섰던 안 전 지사의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안 전 지사가 위력(威力)으로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을 ‘권력형 성범죄’로 인정했다. 특히 피해자 입장을 적극 고려하는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강조해 향후 관련 재판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가 김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김씨의 진술과 김씨로부터 피해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전임 수행비서 등의 진술 정도였다. 물적 증거가 없어 진술의 신빙성을 얼마나 인정할지가 재판의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춰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피해자 진술에 더 신빙성을 부여한 것이다.

대법원은 안 전 지사가 범행 당시 도지사의 위력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앞으로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하고, 그 진술에 입각해 엄중히 처벌받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대법원은 성문제 관련 소송을 다루는 법원에 양성평등의 시각으로 사안을 보는 감수성을 잃지 말고 심리하라고 했다. 바람직한 가이드라인이다. 다만 법조계에서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김씨는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더 이상 김씨 같은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될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꽃뱀’으로 몰아세우는 가해자 중심 문화도 사라져야 한다. 이번 판결이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치인 등 사회 각 분야의 권력자들은 마땅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