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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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보탬이 됐으면 좋으련만… 어차피 봄날은 간다” [책 속의 명구]

소설 '공자' 최인호(1945년 10월17일~2013년 9월25일)

소설가 최인호는 지난 시대의 우상과 같은 작가입니다. 고등학생 때인 1963년 18세의 나이로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히면서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주옥과 같은 글을 쏟아냅니다. 100만부가 팔린 '별들의 고향'. 이 책은 1972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것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 사람들의 눈물샘을 터뜨렸습니다. 진공관 흑백TV 시절이던 당시 애닮은 사랑을 감상하기 위해 ‘별들의 고향’을 상영하는 극장은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지요. 1986년 출간된 '잃어버린 왕국', 1989년부터 3년간 중앙일보에 연재한 '길 없는 길', 1997년부터 3년간 한국일보에 연재한 '상도'는 모두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대작입니다.

 

그는 많은 상을 받습니다. 작가에게 상이란 무엇일까요. 혼을 담은 좋은 글과 작품을 기리는 상징물입니다. 하지만 소중한 가치는 상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남긴 한 줄 한 줄의 문장에 스며들어 남는 것이겠지요. 그가 쓴 책에 남은 문장들이야말로 68년에 걸친 그의 삶의 흔적이요, 그의 시간이 새긴 역사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소설 '공자'입니다. 2012년 6월 출간됐습니다. 소설 '맹자'와 함께. 죽음을 앞두고 쓴 작품입니다. 그때는 이미 암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이듬해 9월 그는 향년 68세로 이승의 시간을 마감합니다.

 

소설 끝머리에 남은 ‘작가의 말’은 다음과 같은 글로 끝납니다.

 

“아아, 이 신춘추전국(新春秋戰國)의 어지러운 난세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으련만. 그런 바람이야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와 같은 것. 어차피 봄날은 간다. 2012년 초여름 최인호”

 

무슨 생각을 하며 마지막 문장을 썼을까요.

 

밤을 지새우며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주옥같은 문장들. 그런 시간도 이제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글이 난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소설 '공자'의 문체는 이전과는 좀 다릅니다. 그의 다른 글에 비해 덜 다듬어진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도 남은 삶의 시간과 싸워야 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혼을 쏟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에 마음은 초초했겠지요. 불쑥불쑥 불거지는 통증. 또 아픔과 맞서야 합니다. 어떤 천재적인 작가라도 그 한계를 뛰어넘어 문장을 전성기처럼 탁마할 수 없을 겁니다.

 

소설 '공자'는 그래서 그의 어떤 작품보다 더 귀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을 취하지만 약 2500년 전 춘추시대의 지혜를 자신의 글로 남기고자 한 작품입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왜 하필 공자와 맹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자 했을까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한국인으로 불리는 그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라고 한 것은 아닐까요.

 

책에 남은 그의 문장을 정리해 봅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는 공자의 말은 공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처음 출국을 단행하던 도중 나온 제일성이었다.

 

- 공자가 제나라로 가던 중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여인만 홀로 남아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지요. 사연을 들은 공자는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것이 어떠냐”고 말합니다. 여인은 “여기에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 가면 무거운 세금으로 그나마 살 수도 없다”고 하지요. 공자는 탄식합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나무는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 구오자(丘吾子)가 공자에게 한 말입니다. 구오자는 세 가지 인생의 실책을 말하는데, 그중 가장 큰 실책으로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꼽습니다. 한탄이 얼마나 깊었던지 구오자는 이 말을 남긴 뒤 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습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은 이로부터 비롯된 성어입니다.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에 있다”(政在節財)

 

▶“위대한 음악은 평이하고, 위대한 예는 반드시 간결하다.”▶“소신이 듣기에 귤은 회수(淮水) 이남에 심으면 귤이 되어 달콤하기 이를 데 없지만 회수 이북에 심으면 작고 시고 떫고 써서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완전히 상반된 것이 되는 까닭은 바로 기후와 풍토 때문입니다. 지금의 죄수는 제나라에 있을 때는 양민이었는데, 어찌하여 초나라에 온 후에는 도적이 되었겠습니까.”

 

​​ -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의 말입니다. 안영은 ‘안자’로 받들어진 인물입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귤화위지)는 말은 이로부터 비롯한 성어입니다.

 

▶“노나라 소공이 닭싸움으로 감정이 상해 삼환씨와 전쟁을 일으킨 것은 마치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割鷄焉用牛刀)’라는 뜻과 같습니다. 소공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 안영의 말입니다.

 

▶“정치를 하는데 어찌 죽이는 방법을 쓰겠습니까. 당신이 선해지려 한다면 백성들도 선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이 바람이라면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한편으로 넘어지게 됩니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 노나라 권신 계강자에게 공자가 한 말입니다.

 

▶불길한 징조인 혜성이 나타났다. 제나라 경공이 신관에게 하늘에 제사를 올려 빌도록 했다. 이에 안영이 말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혜성이 나타난 것은 이 세상에 부도덕한 자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만약 임금께서 부도덕함이 없으실 것 같으면 기도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임금께서 부도덕함이 있을 것 같으면 기도를 드려보았자 혜성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안영은 허례허식 같은 것을 이미 초월한 실용주의자였다.

 

▶윗사람이 하는 말을 무조건 옳다고 부화뇌동하면서 아첨하는 사람은 결국 윗사람을 망치는 간신배에 불과하다. 윗사람이 자기만을 동조하는 자만을 좋아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자를 배척하면 결국 이것은 사회를 붕괴시키는 사회악이 될 수밖에 없다. …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조화롭게 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조화롭게 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을 가려 따르고 좋지 못한 점을 거울삼아 고치기 때문”(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이라고 했다. …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보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반성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고도 했다. … 공자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웠다. 이는 조금 안다고 해서 자신의 학문이 완성되었다고 착각하는 오늘날의 변설가들이 심각하게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덕목이다.

 

▶최인호의 유가·도가 사상 이해 

 

사마천도 '사기'에서 유가와 도가사상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노자의 학문을 하는 자는 유학을 배척한다. 유학자들 역시 노자를 배척한다.” “길이 같지 않으면 서로 일을 꾀할 수 없다.” … 노자와 공자는 중국의 사상을 양분하는 양대 산맥이면서도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사상이 현실적이라면, 노자의 도가사상은 초현실적이다. … 노자는 절대적인 원리로서의 도(道)의 추구, 인간 이성의 한계성에 따른 각성에서부터 이른바 무(無)의 사상과 자연의 사상을 발전시킨다. ‘무’란 도의 본원적 상태며, 그것을 다시 인간의 성품에 있어 무위(無爲), 무지(無知), 무욕(無慾), 무아(無我) 등의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지금 세상은 온통 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과 같은데 그 누가 강물의 방향을 바꿀 수 있겠소.”

 

- 도가 사상가 장저와 걸닉이 공자의 제자 자로에게 한 말 ('논어' 미자편)

 

▶플라톤이 없었더라면 소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아난이 없었더라면 부처의 경전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이며, 최고 지성이었던 바오로가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확산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맹자가 없었더라면 공자의 사상은 맥이 끊겼을지 모르며, 장자가 없었더라면 노자는 다만 수수께끼의 인물로 사라져버렸을지 모른다.

 

▶도척(盜跖)의 공자 비판 

 

“그놈은 노국의 사기꾼 공구(공자)임에 틀림없으렷다. … 되지도 않는 소리만 지껄이면서 농사일도 안 하고 밥을 먹고, 길쌈을 안 하면서 옷을 입고 살아가지 않느냐. 그리하여 입술을 놀리고 혓바닥을 움직여서 제멋대로 시비를 가려 천하의 군왕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도척의 역사 비판

 

“황제(黃帝) 때가 되자, 자연의 덕을 유지해 가지 못했다. 황제는 치우와 탁록의 벌에서 싸워, 피가 흘러 백 리를 물들이기에 이르렀다. 전쟁의 시초다. 그 후 요의 순이 천자가 되자, 여러 벼슬을 두고 인위적인 정치를 행했다. 그 이후 은의 탕왕은 자기 임금인 하의 걸왕을 내쫓았고, 주의 무왕은 은의 주왕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이다음부터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못살게 굴고 다수의 나라가 소수의 나라를 짓밟게 되었다. 탕왕, 무왕 이래의 사람들은 모두 난신적자(亂臣賊子)다.”

 

▶노자가 공자에게 한 말

 

노자는 비로소 자신의 핵심 사상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언어는 천하의 공기(公器)이니, 너무 그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인의(仁義)는 옛날 성왕들이 묵던 주막이니, 하룻밤쯤 자는 것은 몰라도 언제까지나 거기에 묵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

 

“백조는 매일 목욕하는 것도 아니건만 언제나 희고, 까마귀는 매일 검은 칠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언제나 검다. 자연으로 정해진 흑백, 선악은 아무리 논해본대도 바뀌지 않는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