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1960∼1975) 기간 동안 미국 공군이 운영한 AC-47이란 군용기가 있다. ‘스푸키(Spooky)’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이 비행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고참’ 수송기 C-47 스카이트레인(Skytrain) 기체에 기관총 등을 장착, 무장을 시켜 지상 공격기 용도로 개조한 점이 특징이다. 1964년 첫 시험 비행을 실시한 뒤 곧장 실전에 투입돼 베트남전 내내 미 공군이 활용했다.
원래 수송기로 쓰려고 만든 만큼 내부 공간이 넓어 전투기나 헬기보다 훨씬 많은 탄약을 실을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지상의 공격 목표 위에 머물며 적을 향해 총알을 비처럼 퍼붓는 것이 가능하다.
침투작전 시에는 공수부대를 특정 지점까지 싣고 가서 강하시키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다만 수송기의 특성상 속도가 느리고 덩치가 큰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제공권을 완벽하게 확보한 곳이 아니면 적이 지상에서 쏘아대는 대공포에 격추되거나 적 전투기에 의해 쉽게 제압될 수 있다.
최근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에서 뜻깊은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베트남전 기간 AC-47 스푸키 승무원으로 일하다 전사한 공군 장병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세워진 것이다.
11일 미 공사에 따르면 AC-47 스푸키에 탑승해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 사망한 공군 장병 86명의 이름이 추모비에 새겨졌다. 전사자 명부 아래에는 ‘어떤 이들은 목숨을 포함해 모두를 희생했다(Some gave all)’라는 문구를 적었다.
화강암으로 된 이 추모비는 AC-47 스푸키 승무원으로 활약한 이들이 결성한 ‘스푸키 전우회(Spooky Brotherhood)’가 만들어 공사에 기부했다. 이 단체 회원인 데일 화이트 예비역 공군원사는 제막식에서 “추모비에 새겨진 명단을 보니 고통이 밀려든다”고 말했다.
AC-47 스푸키 승무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이 공사 교정에 세워진 건 전사자 중 상당수가 공사 졸업생이거나 공사에서 생도를 가르친 이들이란 점을 감안해서다.
미 공사 생도대의 부지휘관인 클래런스 루크스 공군대령은 제막식 기념사에서 “이 추모비는 여기 공사 터에 건립된 최초의 특별작전 관련 기념물”이라며 “오늘 우리는 올바른 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제막식엔 골드스타 가족회(Gold Star family) 회원 11명도 참여해 청중석을 지켰다. 골드스타 가족회란 미군 전사자 가족으로 구성된 단체다.
AC-47 스푸키는 낡고 너무도 위험했기에 미 공군은 베트남전 후반부에 다른 신형 수송기를 공격기로 개조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각각 C-119와 C-130 수송기를 지상 공격기로 개조한 AC-119, AC-130이 등장하면서 미 공군이 보유한 AC-47 스푸키는 모두 퇴역하거나 외국 공군에 양도됐다.
◆‘스푸키’의 전신 C-47과 한국의 인연
눈길을 끄는 건 AC-47 스푸키의 모체가 된 C-47 수송기가 한국과 아주 인연이 깊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 직후인 1945년 11월23일 아직 중국 상하이에 머물고 있던 백범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15명은 미군의 주선으로 이 C-47 기종을 이용해 환국했다. 임정 요인들을 태우고 한국에 도착한 C-47의 착륙 지점은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비행장’이 있던 서울 여의도로 지금의 여의도공원에 해당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