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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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직장은?…"명절은 '잔소리 지옥'이다"

“만나는 사람은 있느냐, 결혼을 하기는 할 거냐고 물어보시는데, 그 자체가 스트레스죠”

 

직장인 최모(29)씨는 명절만 되면 반복되는 친척들의 질문공세에 이번 추석도 그리 반갑지 않다. 최씨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어서 결혼이나 연애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데,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죄짓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며 “이번 연휴에는 결혼 관련 질문이 없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혼인율은 매년 줄어들고 ‘혼자가 좋다’는 비혼족은 갈수록 증가하는 가운데, 명절만 되면 결혼 여부를 놓고 청년세대와 중·장년세대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12일 취업포털 커리어가 회원 515명(직장인·구직자 포함)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석 명절 잔소리’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은 안 하니(22.2%)’와 ‘애인은 있니(20.1%)’가 직장인들이 가장 공감하는 잔소리 2위와 3위로 꼽혔다. 이러한 잔소리를 들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엔 ‘웃음으로 대충 넘긴다(32.8%)’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30대 직장인 A씨는 “친척 어른들이 하는 질문이다 보니 그냥 웃어넘길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이러다 보니 차라리 명절에는 고향에 안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A씨처럼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귀향 자체를 꺼리는 청년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미혼남녀 416명을 대상으로 올해 추석 연휴계획에 대해 물은 결과, 10명 중 6명(67.1%)이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귀향하지 않는 이유로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32.7%)’와 ‘명절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돼서(19.4%)’등이 뽑혔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은 필수’라고 여겨왔던 과거와는 달리 연애와 결혼을 ‘선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청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44세 미혼 남성 1140명을 대상으로 이성 교제 여부를 물어본 결과 10명 중 7명(74.2%)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미혼 여성의 경우도 1324명 중 68.2%가 ‘교제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성 교제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적당한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미혼 남성 33.8%, 미혼 여성 32.5%)’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지만, ‘이성 교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미혼 남성 20.1%, 미혼 여성 26.2%)’과 ‘혼자만의 자유로움과 편함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미혼 남성 12.2%, 미혼 여성 20.6%)’ 등의 답변도 뒤를 이었다. 3년 넘게 솔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모(26)씨는 “(명절에) 결혼 관련 질문이 나오면 사실 왜 결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되묻고 싶다”며 “현재로써는 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실제 보건사회연구원이 이들에게 ‘결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미혼 남성 58.8%, 미혼 여성 45.3%만이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15년 설문조사 결과(남성 74.5% 여성 64.7%)보다 약 20%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실제 혼인 건수도 2012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5만7600건으로 197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이에 대한 원인으로 ‘경제적 측면’과 ‘혼인에 대한 가치관 변화’, ‘인구 구조적인 측면’ 등을 꼽았다. 과거에 비해 높아진 2∼30대의 실업률과 주거비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 등이 청년들이 결혼을 꺼리는 이유라는 것이다. 

 

비혼을 선택한 직장인 유모(26)씨는 “요즘 청년들은 결혼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친척들이) 무조건 결혼을 하라기보다는 이러한 점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