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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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트럼프 탄핵 정국이 북핵에 몰고 올 후폭풍을 경계한다

비핵화 협상 동력 약화 가능성 / 北과 ‘엉성한 합의’ 시도할 수도 / 정부의 면밀한 상황 관리 절실

미국 민주당이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하원에서 탄핵 조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적 책무를 저버린 것이며,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탄핵 카드를 꺼내들면서 미국 정치는 물론 국제 정치·경제·안보 등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뒷조사를 요구해 권력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 탄핵은 하원의 탄핵소추와 상원의 탄핵심판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탄핵소추안은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을 통과해도 공화당이 과반인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탄핵 정국의 불똥이 북핵 문제로 튈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워싱턴 정가가 탄핵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 트럼프 행정부는 총력 대응에 나설 것이고, 대외 현안들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 추진은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이뤄졌다. 모처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는 북핵 협상의 동력이 약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가장 우려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북한과 ‘엉성한 합의’를 하고 대성공이라고 포장할지도 모른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수준에서 봉합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북핵을 용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안보에는 치명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초강경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한 데 이어 북핵 폐기와 관련해 ‘새로운 방법’을 언급하면서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도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취지”라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황 관리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도발에는 눈을 감고 평화 타령을 늘어놓는 안이한 태도로는 ‘트럼프 리스크’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우리 안보는 풍전등화 신세에 놓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