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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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선거와 맞물린 안보전략 우려스럽다

한·미 정상회담 진전 없이 끝나 / 동맹 균열 봉합 기대만큼 못해 / 북핵 ‘선거용 이벤트’ 회의론도 / 한국, 이 와중에 ‘안보 홀로서기’

유엔총회와 함께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이 특별한 진전 없이 양국의 기존 입장만 확인한 가운데 마무리됐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복원 등 한·미·일 삼각협력 체제를 바로잡을 현안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고 북한 비핵화 관련 원론적 얘기만 오간 정상회담이었다. 요즘 한·미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 정상회담은 이를 봉합하는 역할을 기대한 만큼 하지 못한 것 같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

오히려 이에 반하는 정책적 변화가 들린다. 한·미동맹에 편승하는 안보정책에서 탈피해 중국을 포함한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연구하는 과제를 국방부가 발주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안보전략이 한·미동맹에 기초한 대미편승전략에서 한·미 및 한·중 관계를 함께 고려한 균형전략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은 물론 중·러 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와중에 우리만 안보 홀로서기를 하는 데 있다.

이를 감지한 듯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분담금 협상에서 우리에게 분담금 증액을 줄기차게 요청해 왔다. 한·미동맹의 이완 속에서 그 부담을 미국이 크게 질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불협화음이 이전의 사례와 그 원인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1970년대 초 긴장완화 시기와 1990년대 초 탈냉전 흐름 속에서의 동맹 이완은 모두 국제정세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나 지금의 상황은 국내정세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내년에 대통령 재선을 앞둔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 후반기의 향방을 가를 총선을 치를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득표용 이슈를 안보에서 찾다 보니 양국 정상의 합의가 어디로 튈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탄핵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미국 정가가 민주당의 탄핵카드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한국 역시 ‘조국 스캔들’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를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 1년여간 남북한 간 및 북·미 간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우리가 내린 결론은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돼가고,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위협만 없으면 된다는 점이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지 모른다는 발표를 했다. 또한 지난 주 9·19 평양선언 1주년 기념 비무장지대(DMZ) 포럼에서 한 참가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방문 가능성을 점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북·미 정상 간 대화의 끈이 유지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남북한 및 북·미 정상회담을 거듭할수록 한편으로는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가 아닌가 하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진정성 있는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신고전적 현실주의 사고에 의하면 국제 체제뿐 아니라 국내 정책결정 환경이 국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국제 정치학자인 랜달 슈웰러는 “국가는 이익에 따라 균형화를 추구할 수도, 편승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이익균형이론’을 주장한 바 있다. 한·미동맹의 이완이 결국 양국 간 국가이익의 셈법을 바꿔놓은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의 이견이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을 주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홀로서기를 위한 균형전략을 구현한다면 그 대가는 가혹할는지 모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가교하는 국가로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중관계와 남북한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우리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상황이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