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팬들은 26일 새벽 스페인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에서 뛰고 있는 ‘한국축구의 미래’ 이강인(18)이 헤타페와의 리그 6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전한다는 내용이었다. 마르셀리노 감독이 해임되고 알베르트 셀라데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출장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는 예상됐지만 새 감독 부임 4경기 만의 선발 발탁은 뜻밖이었다. 팬들의 마음속에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과도한 부담이 독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까지 피어올랐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일단 기회가 주어지자 이강인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다. 스페인 발렌시아 캄프 데 메스타야에서 열린 이날 경기에서 발렌시아는 3-3 무승부를 거뒀지만 이강인은 데뷔골 득점을 포함해 발렌시아가 만든 3골에 모두 관여하며 반짝반짝 빛났다.
이강인의 기념비적인 첫 선발출장 경기였지만 경기 초반 흐름은 좋지 못했다. 1분 만에 코너킥 상황에서 헤타페의 하이메 마타에게 선제골을 내준 탓이다. 너무나 이른 실점으로 발렌시아는 홈경기임에도 경기 초반 상대에게 완전히 기세를 내줬다.
이 나쁜 흐름을 이강인이 끊었다. 4-4-2 전술의 왼쪽 날개로 나서 전반 중반 이후 볼 컨트롤을 늘리더니 전반 30분 페널티 지역 왼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올린 크로스로 추격골의 기틀을 놓은 것. 수비수가 헤딩으로 방향을 돌려놓자 튀어나온 볼을 막시 고메스(23)가 오른발 시저스킥으로 동점골로 만들었다. 전반 34분에는 오른쪽 코너킥 상황에서 다니 파레호(30)에게 내준 패스가 크로스로 이어졌고, 이를 고메스가 골지역 왼쪽에서 번쩍 솟아올라 헤딩으로 역전골을 터트렸다. 동점골, 역전골에 이강인이 중요 조연으로 자기 몫을 해냈다.
세 번째 골 때는 스스로 주연을 맡았다. 전반 39분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호드리고 모레노(28)의 땅볼 크로스를 골지역 정면에서 오른발 슛으로 방향을 바꿔 골망을 흔들었다. 이강인은 18세219일 만에 정규리그 데뷔골을 기록해 모모 시소코(18세 326일·프랑스)를 제치고 발렌시아 구단 역대 외국인 최연소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셀타에서 뛰었던 박주영(34·FC서울)에 이어 라 리가에서 득점을 기록한 두 번째 한국인 선수로도 기록됐다. 박주영의 라 리가 통산 득점은 세 골에 불과해 머지않아 이강인이 최다 득점자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쉽게도 발렌시아가 후반 들어 두 골을 내리 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해 이런 대활약은 팀 승리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경기로 이강인이 미래를 바라보는 유망주가 아닌 당장 리그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만은 팬들에게 확실히 알렸다. 실력을 입증한 만큼 향후 리그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더 많은 출장시간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