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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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손발 안맞는 부처, 돼지열병 禍 키웠다

연천서만 멧돼지 28마리 폐사 / 환경부, 농식품부와 공유 안해 / 사체 검사 자료 활용 시기 놓쳐 / 강화서 7,8번째 확진… 확산 ‘공포’ / 하루 새 양주·연천 등서 5곳 의심신고
경기지역 양돈 농가 곳곳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이어져 전국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이 연장 발효 중인 26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 양돈 농장에서 돼지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다. 해당 사진은 차단 방역선 밖에서 망원 렌즈로 촬영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제대로 대처를 못해 사태를 키운 것 아닙니까.”

 

26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의심신고가 접수된 경기 양주시 은현면 한 주민은 “한 지인은 정부가 하라는 대로 그렇게 열심히 소독하고 병균 옮을까 꼼짝도 안 했는데 결국 돼지 열병에 걸리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ASF가 빠른 속도로 수도권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 부처 간 엇박자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SF 최초 전파 경로로 야생멧돼지 폐사체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방역을 책임지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야생동물 관리를 담당하는 환경부가 관련 자료를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지난 1∼8월 북한 접경지역 야생멧돼지 폐사체 조사에서 경기 파주시에서 6마리, 연천군에서 28마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는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결과와 다르다. 환경과학원은 같은 기간 파주에서 4마리, 연천에서 8마리를 발견했다. 

 

검사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농식품부는 ASF뿐만 아니라 돼지열병(CSF), 돼지콜레라, 구제역 등 관련 질병 감염 여부를 모두 조사했지만 환경과학원은 ASF와 CSF만을 검사했다. 또 환경부 측은 항원검사만 진행했을 뿐 바이러스가 거쳐 간 흔적까지 알 수 있는 항체검사는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지난 5월30일 북한 자강도에서 ASF가 발생하고 지난 16일 파주에서 첫 ASF가 발생한 이후 최근까지도 농식품부와 환경부가 관련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폐사체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폐사체 검사 결과는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천 강화지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가 확산해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린 26일 오전 ASF가 확진된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한 양돈농장 인근에서 방역차량이 소독약을 살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처 간 칸막이 때문에 가축전염병 역학조사의 기초인 폐사체 검사 자료가 제때 활용되지 않은 가운데 ASF는 빠른 속도로 수도권 북부 전방위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농식품부는 이날 인천 강화군 삼산면 한 돼지농가가 일곱 번째 ASF 확진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강화도 본섬이 아닌 석모도에 위치해 돼지 2마리를 키우고 있던 삼산면 농가는 전날 정밀검사 과정에서 ASF 의심 증상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강화읍에서 돼지 980마리를 키우는 농장도 8번째 ASF가 발생했다. 

 

이날 하루 동안 경기 양주시 은현면 2곳과 연천군 청산면, 강화군 강화읍 및 청산면 돼지농장에서 5건의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특히 비무장지대(DMZ)에서 직선거리로 27㎞ 떨어져 있는 양주시에서 ASF 의심신고가 접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ASF가 발생한 농장에서 전파했을 가능성이 크다.

 

 

ASF가 2차 감염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이자 정부는 전국 가축 일시이동중지명령(Standstill)을 오는 28일 낮 12시까지로 추가 연장했다. 또 경기 북부지역 축산 관계 차량들의 타 지역으로의 반·출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창훈·송민섭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