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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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크라우드펀딩에 눈을 뜨다

#1. 최근 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는 소방 공무원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소방관 수호 반지가 펀딩 물품으로 올라왔다.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한 팀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소방 공무원에게 힘이 될 무언가를 고민했다”며 펀딩 이유를 밝혔다. 후원자들은 펀딩에 참여한 대가로 반지를 받고, 이들이 보낸 금액 중 일부는 한국소방복지재단에 기부된다. 후원자 입장에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는 동시에 보상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펀딩 시작 하루 만에 목표금액 50만원이 달성됐고 펀딩이 보름 정도 지난 현재 목표금액의 600%가 넘는 돈이 모였다.

 

#2. 이모(27)씨는 지난해 4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가방을 구매했다. 평소 수납공간이 많은 가방을 찾고 있던 이씨는 시중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사이트에 수납공간이 넉넉한 가방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고 이씨는 고민 없이 펀딩에 참여했다. 그는 “구매한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가방을 자주 사용한다”며 “확장성과 견고함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후원, 기부 등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에 20대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몇 년 새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갖춰진데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소신 있는 투자를 하는 20대의 성향이 크라우드펀딩의 특징과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4일 한국예탁결제원 크라우드넷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2016년 174억4248만원이던 크라우드펀딩 성공실적은 2019년 9월 기준 263억86만원으로 급증했다. 2017년 277억6418만원, 2018년 298억5319만원을 기록한 크라우드펀딩 성공실적은 올해 최초로 3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리워드형과 투자형으로 나뉜다. 리워드형은 개인이나 회사가 자신의 상품을 소개하면 마음에 드는 후원자들이 후원을 통해 해당 상품을 얻는 방식이다. 일반 상품 구매와 유사하지만 판매자와 투자자의 교류가 활발해 투자자 요구, 트렌드에 맞춘 상품이 많은 게 특징이다.

 

투자형은 후원자들이 특정 프로젝트나 회사를 주식, 채권 등의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후원자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등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이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를 연령별로 나눠보면 20대의 펀딩 참여율이 눈에 띈다. 크라우드넷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한 투자자 5만2992명 중 30대 미만이 13169명으로 전체의 25%를 차지했다. 20대는 30대(2만1903명, 42%) 다음으로 활발하게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대가 상대적으로 고정 수입이 낮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소확행과 미닝아웃이 20대 크라우드펀딩 이끌어

 

20대는 투자형보다는 리워드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리워드형은 소액으로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어 참여가 용이하다.

 

20대가 크라우드펀딩 리워드형에 열광하는 이유로는 소확행과 미닝아웃(Meaning Out)이 꼽힌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미닝아웃은 사회적 관심을 소비로 표출하는 행위를 뜻한다.

 

20대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소확행을 맛본다. 30번 이상 크라우드펀딩을 했다는 이씨는 “기성품의 경우 대다수의 요구와 취향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기능이나 디자인을 가진 제품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내가 찾는 기능이 탑재됐거나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의 제품을 찾는데 상대적으로 편리하다”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20대는) 실용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욕구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찾는 적극적인 소비자”라며 “(20대의 크라우드펀딩 열풍은) 소확행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20대는 사회적 관심을 표출하는 통로로 크라우드펀딩을 찾기도 한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드러내고 참여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기 때문이다.

 

최근 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는 반달가슴곰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가 입소문을 탔다. 해당 펀딩은 반달가슴곰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 하에 티셔츠 등을 리워드로 내걸었다. 후원자들이 티셔츠 등 리워드를 구매하면 해당 후원금은 해먹 제작, 곰 농장 조사 보고서 제작 등에 사용된다. 목표금액 300만원을 내걸고 시작된 해당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시작 3주만에 목표액의 450%가 넘는 1400만원이 모였다. 20대는 소비에서 기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뿌듯함을 느끼고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다.

 

5번 정도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김모(25‧여)씨는 크라우드펀딩을 하는 이유를 묻자 “소액부터 다액까지 원하는 액수대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며 “시공간적인 여유가 없어 오프라인에서 참여할 수 없었던 시민운동에 비교적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생활문화소비자학)는 “(20대들은) 무조건 기부하기에는 기회와 돈이 많지 않다”며 “자기도 상품을 받음으로서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고, 동시에 도움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생산자로 직접 뛰어들기도…“자본금 없어도 가능한 게 매력이죠”

 

20대들은 크라우드펀딩의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자신의 사회적 신념이나 가치관을 담은 책을 발간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상품을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4일 세계일보가 인터뷰한 ‘담담’팀은 20대 중반 여성 3명으로 이뤄진 팀이다. 대학교 때 함께 독서모임을 진행했다는 이들은 지난 7월말 우리나라 옛 여신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했다.

 

펀딩 시작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목표금액 150만원을 달성했고 최종적으로 523명으로부터 약 850만원을 후원받아 성공적으로 펀딩을 마쳤다. 담담팀은 고전문학 등에 나오는 다양한 여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해 크라우드펀딩을 매개체로 삼았다.

 

크라우드펀딩 과정 중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담담팀은 “책이라 생각해 글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편집과 교열, 표지 작업 등 책을 만드는 과정 전체 중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이 과정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크라우드펀딩을 할까 말까 고민한다면 해보기를 추천한다. 매력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후원을 받을 수 있다. 자본금이 없어도 무엇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크라우드펀딩을 적극 추천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