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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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빈집 활용 공유숙박… ‘거주자’ 있어야 허용한다는 정부 [심층기획]

각종 규제에 갇힌 공유경제 / 스타트업 ‘다자요’의 눈물 / 빈집 리모델링해 관광객 유치 계획 / 전국 지자체서 러브콜 이어졌지만 / 국내법상 근거 없어 4년째 제자리 / 황당한 ‘자국민 역차별’ / 내국인이 ‘에어비앤비’ 묵으면 불법 / 한국이 세계 유일 … 등록도 까다로워 / 실제론 2018년 이용객 69%가 내국인 / 신산업 뒷받침 못하는 정책 / 정부, 2019년 초 활성화 방안 내놨지만 / 신규 사업자에 낡은 규제 적용 여전 /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 목소리 높아
최근 기존 산업이 ICT(정보통신기술)와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ICT로 기존의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플랫폼 모델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서는 우버(차량 공유)와 위워크(부동산 재임대),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등 분야별로 다양한 플랫폼 사업이 부상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유독 국내에서는 그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플랫폼 사업자와 스타트업 등 관련 업계에서는 규제 탓이라고 아우성이다. 규제가 너무 강하거나 중첩돼 있고 반대로 관련 규제가 전무해 사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맞게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다 보니 사장되는 혁신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빈집 활용하겠다는데 ‘거주’ 잣대 들이대는 정부

2015년 창업한 스타트업 다자요는 농어촌 지역에 방치된 빈집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전국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수백만채의 빈집을 활용하겠다는 취지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록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심지어는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다자요의 사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엉거주춤 눈치만 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다자요는 제주에서 공유민박 사업을 시작했다. 빈집에 1억∼2억원가량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무상임차하며 숙박료를 받는 것이다. 리모델링뿐 아니라 보안업체, 방역업체와 제휴하고 화재 등 각종 보험에도 가입했다. 기부채납처럼 무상임차 기간 10년이 지난 뒤에는 집주인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다수의 빈집은 주인이 은퇴 후 돌아갈 곳으로 남겨 놓고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당장 살기도 애매해 방치하는 마당인데, 빈집이 리모델링되고 유동인구를 끌어들여 지역 활성화까지 도모할 수 있다니 집주인이나 해당 지자체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자체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농어촌 지역과 도심 지역을 가리지 않고 빈집 활용에 대한 고민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다자요의 사업모델은 국내법상 근거법이 없다는 이유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빈집과 관련된 법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유일한데, 이는 빈집을 철거하거나 개량해 주거목적으로 활용하는 게 목적이다. 다자요의 사업 모델과는 취지 자체가 다른 것이다.

숙박업이나 민박업 관련 법령이 있기는 하지만 호텔이나 여관 같은 숙박시설이 아닌 민박시설은 집 주인이 거주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법대로라면 국내에서 건물 전체를 민박 형태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독채 민박)은 모두 불법이고, 농어촌 지역에서는 여관이나 호텔 등 숙박시설만 들어설 수 있다. 결국 빈집을 활용하겠다며 야심 차게 출발한 사업 모델은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좌절 위기에 내몰렸다. 집주인이 민박업으로 허가받지 않은 별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민박으로 제공하려다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누더기 같은 기존 법령에 가로막힌 숙박공유

숙박 공유 분야의 대표적인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다자요의 사례와는 반대로 중첩된 제도로 난항을 겪는 경우다. 국내 도시에서 한국인이 에어비앤비 숙소를 사용하면 불법이다. 2011년 관광진흥법이 신설되며 마련된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때문이다. 이 제도는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내국인은 영업 대상에서 배제했다. 한옥 체험으로 허가를 받은 민박을 제외하면 도시 지역에서는 내국인을 받을 민박이 없는 것이다. 한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자국민의 에어비앤비 이용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한국은 내국인에게 민박을 제공하는 것이 불법이라서 숙박을 거절당한 손님의 항의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유숙박의 근거가 되는 제도는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한옥체험업 △농어촌민박업 3가지인데, 정부는 올해 초 공유경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며 공유민박업을 새로 추가했다. 도시에서는 기존의 도시민박업과 새로 추가된 공유민박업 중 하나만을 선택해 영업할 수 있는데, 공유민박업은 내국인을 받을 경우 연간 180일로 영업일을 제한하고 있어 ‘내국인 차별’ 이슈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내국인의 에어비앤비 이용이 막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에어비앤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고객 중 69%가 내국인이었다. 아울러 도시민박업 허가를 받을 때 이웃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소음 등을 이유로 동의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허가받지 않고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등록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어비앤비 관계자는 “수요 증가세가 뚜렷한 숙박공유에 대해 합리적인 제도가 마련된다면 많은 사람이 적정한 가격에 한국에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관광산업이 활성화하고 호스트들은 부수입을 얻어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산업에 기존 규제 아닌 새로운 규제 적용해야

다자요와 에어비앤비 사례는 새로운 영업 형태에 우격다짐으로 기존 규제를 적용하는 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가 뭐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는 빗발치는데, 정부는 신규 사업자와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속에서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부터 그렇다. 정부는 ‘숙박, 교통, 공간, 금융, 지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유경제를 활성화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알맹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된 분야는 공유숙박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기존 도시민박업과의 중첩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것이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때에도 공유경제 모델이 발표됐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별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공유경제에 대한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플랫폼이 등장한 뒤 파생산업이 창출되고 있다. 다자요의 모델은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임대수익을 받지만,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공유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한 사업모델이다.

해외에서는 플랫폼과 공생하는 자산관리업체(Property Management Company)가 생겨나며 플랫폼 경제를 더욱 두껍게 하고 시너지를 발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계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게스트레디는 최근 증가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호스트의 집안 청소, 세탁 등의 일뿐 아니라 홈페이지 관리,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마련했다. 이러한 파생기업은 플랫폼과 별도로 성장하기도 하고, 인수·합병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스타트업과 플랫폼 기업의 좌절이 지속하면서 ‘포지티브 규제 방식’에 대한 의문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란 법적으로 허용된 것만 할 수 있고, 규정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는 법체계다. 다자요 역시 빈집 사업에 대한 규제가 없어 난항을 겪기 때문에 포지티브 규제로 난항을 겪는 경우에 속한다.

반대로 네거티브 규제는 법에서 금지하는 것을 빼고는 뭐든 해도 상관없는 체계다. 다수의 선진국은 물론 최근 경제가 급속히 팽창하는 중국 또한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존에는 경영계를 중심으로 네거티브 규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고, 이를 정부가 그나마 반영한 것이 ‘규제 샌드박스’였다. 최근에는 법조계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입법이 따라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신산업을 활성화하고 투자 규모를 늘리기 위해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창의와 혁신을 위해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영역이라면 우선 시장에 맡기고 사후 입법을 통해 보완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계되거나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대해서는 포지티브 규제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며 “양쪽에 모두 대응할 수 있도록 포괄적 규제 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