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황영미의영화산책] 청년백수의 마지막 비상구

구직희망 청년 가운데 4명 중 1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무원 시험을 보려는 ‘공시족’을 포함하면 둘 중 한 명이 백수라는 구인·구직 사이트의 통계가 나왔다. 청년 백수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10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영화 ‘엑시트’(감독 이상근)는 청년 백수 주인공 용남(조정석)의 상황을 공감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능력은 있지만 조카한테까지 무시당하며 살아간다. 같은 신세인 선배는 “앞이 하나도 안 보여”라며 한숨을 쉰다. 용남은 “눈을 떠”라고 말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화 중 재난문자가 오자, “지진, 쓰나미만 재난이 아니라 우리 상황이 재난 그 자체라고” 하며 한탄한다. 용남은 엄마 현옥(고두심)의 칠순잔치에서도 “오빠는 하루 종일 뭐해”라고 묻는 친척에게 “그냥 자, 산소 낭비하면서”라고 답하며 자조한다.

칠순잔치 컨벤션홀에서 대학 산악부 후배였던 부지점장 사회초년생 의주(윤아)와 재회하게 되면서 영화는 재난영화로 진행된다. 해고당한 회사에 불만을 품은 응용화학자가 저지른 유독가스 테러가 도시를 뒤덮고 이들이 있는 컨벤션홀까지 올라오면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게 된다. 용남과 의주는 대학 동아리 시절 배운 응급구조 지식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자신들은 암벽 등반하던 실력으로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면서 피신한다. 옆 건물 학원에 아이들이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평소 집안에서는 구박덩이였지만, 위기가 닥치자 용남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무도 선뜻 내지 못하는 용기를 내 히어로가 된다. ‘엑시트’의 용남처럼 자신의 재능과 기술이 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양한 직업이 생기기도 하고 기존의 인기 직종이 사라지기도 한다. 청년들은 기존의 직업 패턴에 연연하지 말고 시대변화를 읽어내는 눈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통찰력으로 새로운 직종에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 정부는 청년들에게 청년 구직활동지원금만 지원해 줄 것이 아니라, 컨설팅 제도를 활성화해 길이 막막한 청년들이 보다 넓은 세계에서 재능을 다양하게 발휘할 기회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지막 비상구일 수 있으니까.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