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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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애국하자”… 불법 스캔 만화 사이트서 벌이는 이상한 'NO 재팬'

日 불법만화 보면서 “애국”이라는 사람들 / “공짜로 읽는게 日 타격줘” 주장 / 무단 번역·유포 등 저작권법 위반 / 이용자들 불법행위 정당화 논란 / 사이트는 수십억원 광고비 챙겨 / 국내 만화시장 성장도 저해 지적

“읽어서 불매하자” “보고 애국하자”

 

언뜻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일본 불매운동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일본산 제품을 이용하면서 불매운동에 동참하자는 주장이 올라오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할 일본 만화를 불법으로 스캔해 번역해 올리는 사이트다. 원리는 간단하다. 이곳에서는 원래부터 일본 만화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해온 터라 일본 만화를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에 손해를 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만연했던 무단 복제와 소홀했던 저작권 의식이 일본 불매운동 과정에서 이상한 형태로 표출된 셈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불법만화 시장은 경찰의 강력한 단속에도 여전히 성황이다. 과거 국내 19위의 트래픽 순위를 자랑하던 일본 불법만화 사이트 마루마루가 폐쇄된 이후에도 유사 사이트들이 줄지어 등장하면서 경찰 수사를 회피하고 있다.

 

미국 데이터 분석 사이트 시밀러웹에 따르면 마루마루의 대체 사이트인 마루마루se는 폐쇄 직전인 올해 5월만 해도 접속자 수 395만여명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마나모아라는 또 다른 대체 사이트가 등장했다. 이 사이트에서 이용자들은 무료로 일본 만화를 보는 것이 불매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사지 않고 일본 만화를 몰래 보는 행위가 곧 애국이라는 것이다. 한 이용자는 ‘불매=사지않음=사지 않고 훔쳐봄=애국자 따봉’이라면서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번역하고 유포하는 것은 엄연한 저작권법 위반행위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저작권 관련 준법의식은 안일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과거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국인들 중 만화책을 정식으로 구입해 읽는 사람이 5명 중 1명뿐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운영자들이 대부분 서버를 외국에 마련해 놓고 있어 수사하기 까다로운 것도 일본 만화 사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이런 현실에서 일본 만화 사이트들은 연간 수십억원대의 인터넷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수익구조를 본떠 한국 웹툰을 불법으로 스캔해 서비스하는 사이트들도 우후죽순 나타나 국내 만화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이 8월부터 이달까지 ‘저작권 침해 해외사이트 특별 단속기간’으로 정하고 합동단속을 실시해 운영자를 검거하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등 팔을 걷었지만, 이 기간에도 제2, 제3의 불법 사이트들이 광고수익이라는 떡을 먹으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만화출판협회 관계자는 “불법 일본 만화 스캔본이 퍼지면서 만화 출판업계와 대여업계 등이 말할 수 없이 황폐화됐다”며 “경찰 단속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최근 대체사이트가 범람하는 풍선효과가 일어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불법만화를 보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것”이라며 “저작권자들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불법 만화 사이트 이용을 멈춰 달라”고 당부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