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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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복권의 저주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당연히 ‘아이비(Ivy)리그’에 속하는 미국의 명문대학들이란 답이 나올 것이다. 한데 공통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복권을 팔아 마련한 재정으로 설립한 대학이라는 점이다.

복권만큼 손쉬운 재원조달 수단도 없다. 미국의 후버댐 건설 자금도, 대영박물관을 지은 돈도 다 복권에서 나왔다. 서슬 퍼런 프랑스 혁명정부조차 1793년 “로또가 빈민을 착취한다”며 전면 금지했다가 6년 만에 발행을 재개했을 정도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은 고통 없는 세금이자 이상적 재정 수단”이라고 했다.

복권 당첨으로 돈벼락을 맞는 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국내 로또 최고 당첨금액은 2003년 4월에 나온 407억2200만원. 앞선 회차에서 1등이 나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한 사람이 독식한 결과다. 2016년 1월 미국 파워볼에서는 세계 복권 역사상 최고 당첨금인 15억달러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1등 당첨 확률은 로또 복권의 35배인 2억9220만분의 1이었다.

돈벼락은 그만큼의 행복을 선사할까. 미국에서 1000만달러 이상 복권에 당첨된 지 10년이 넘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이전보다 불행해졌다”고 답한 이가 64%에 달했다. 미국 사업가 잭 휘태커가 대표적인 사례다. 3억1500만달러의 돈벼락을 맞은 그는 기세 좋게 복권판매상에게 집과 차를 선물하고 자선단체에 통 큰 기부도 하며 맘껏 기분을 냈다. 하지만 이후 음주운전, 술집 주인 폭행, 도박 등으로 460건의 소송에 연루돼 5년 만에 당첨금 전액을 탕진했고 아내와 이혼까지 했다. 휘태커는 “복권 당첨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고 고백했다.

최근 전북 전주에서 로또 1등에 당첨됐던 형이 동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때는 형이 집 사는 데 보태라며 동생에게 1억여원을 줄 정도로 우애가 깊던 형제였다. 하지만 형이 동생 집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의 이자조차 내지 못하게 되자 형제가 다투게 됐고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 복권 당첨이 인생역전 대신 인생 파탄을 불렀다. 그래도 복권 판매소의 줄은 갈수록 길어진다. 이런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김환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