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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낯선 한국의 목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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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시부모를 뵙기 위해 남편의 고향을 들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가 면 소재지에 있는 목욕탕에 가자고 하셨다. 남편은 집에서 출발하기 전 당황스러워하는 내게 한국의 목욕 문화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었다. 나는 몸을 씻기 위해 집이 아닌 목욕탕에 간다는 그 자체가 놀라웠다. 한편으론 ‘한국의 목욕탕은 어떤 곳일까’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먼주 구릉 네팔 한국문화센터대표

남편이 데려다줘 얼떨결에 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갔다. ‘기대 반 우려 반’ 이라 할까. 카운터에서 수건을 받아 들고 시어머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옷장이 즐비한 곳에 멈춰 선 시어머니는 옷을 훌훌 벗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더니 옷을 모두 벗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빨개지고, 귓불이 뜨거워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어머니를 따라 탕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 쳐다보는 것 같아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어쩔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며 다독여 주셨다.

내부에는 큰 욕조와 작은 욕조 몇 개가 있었다. 욕조 안에는 알몸인 할머니, 아주머니 등이 가득했다. 시어머니는 한쪽 끝 샤워기가 있는 곳에 앉으신 후 따뜻한 물을 내게 뿌려주고 몸을 씻겨주셨다. 나는 순간 어린 소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집에서 목욕을 시켜주던 어릴 때의 추억 속에 빠져든 것이다. 이후 마음이 편해지며 나도 시어머니의 등에 물을 뿌리고 때를 밀어드렸다.

그때 시어머니와 내가 번갈아가며 몸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던 한 아주머니께서 시어머니에게 “딸이냐”고 물으셨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예요”라고 하셨는데 우습게도 당시 나는 ‘목욕탕에는 어머니와 딸이 오는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집에 온 후 시어머니는 다른 며느리도 있지만 목욕탕엔 나와 처음 간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내가 외국인 며느리라 낯선 문화의 적응을 돕고자 데리고 간 게 아닌가 싶다.

네팔에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다. 목욕도 혼자 한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다 벗고 목욕을 하게 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나는 처음엔 남편이 시어머니와 옷을 다 벗고 목욕을 한다고 해서 그 충격이 실로 컸다. 하지만 돌아보면 목욕으로 인해 시어머니와 빨리 가까워진 것 같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때쯤이면 시어머니와 갔던 목욕탕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시어머니와 갔던 목욕탕은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라마다 단순히 씻는 행위를 넘어 서로 다른 목욕문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내게 남편은 “한국의 목욕탕은 때만 벗기는 곳이 아니라 정(情)을 쌓는 공간”이라며 “목욕을 같이한 사이는 알몸도 스스럼없이 보여줄 만큼 친한 관계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목욕탕에 가는 일이 내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겨울엔 예전 시어머니와 그랬듯이 시누이와 목욕탕에 가 지친 일상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묵은 때를 씻어내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먼주 구릉 네팔 한국문화센터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