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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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시즈쿠도 울고 간 한국 소믈리에 대회 결선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파크 하얏트 부산 박민욱 소믈리에 영예의 우승 / 결선 난이도 여느때보다 매우 높아 

 

파크 하얏트 부산 박민욱 소믈리에

“2019 제18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 영예의 1위는! 1위는!”

 

무대위에 오른 두 남자. 애써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이 멀리서도 보인다. 이제 사회자의 입에서 이름이 불리는 남자는 우승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2위다. 사회자는 잠시 뜸을 들인뒤 이름을 부른다. 팽팽하던 긴장감이 탁 풀리는 순간. 이름이 불린 남자는 잠시 미소짓는듯 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다. 키가 18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는 그만 그대로 무대위에서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어깨를 마구 들썩이며 폭풍 오열을 쏟아낸다. 보는 이들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덩치 큰 남자의 눈물. 여기까지 오는것이 얼마나 힘들었기에. 얼마나 그에게 절실했기에. 남자는 일어선 뒤에도 뒤로 돌아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그렇게 운다. 4번의 결선도전 끝에 얻은 결실. 파크 하얏트 부산 박민욱 소믈리에. 소펙사 코리아가 주최한 한국 소믈리에 대회 올해의 우승자다.

 

파크 하얏트 부산 박민욱 소믈리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간 울먹거리며 우승 소감을 이어간다. “와인을 시작한지 9년이 됐어요. 와인은 나에게 많은 도전을 하게 만들었죠.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해졌고 육체적으로도 더 건강해질려고 노력했어요. 9년동안 돌이켜 보면 진짜 외톨이처럼 혼자인적도 많았구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도 좀 있었구요. 그런데 그때마다 한국 소믈리에 대회 명예의 전당 사진들을 보면서 매일 노력했었습니다. 매일 좀 더 힘내야지. 좀 덜 자야돼. 좀 아껴서라도 공부해야돼”. 한국 최고의 소믈리에가 되기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고통의 순간을 견디고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온 땀에 젖은 시간들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프랑스 시라 와인들

한국 최고의 소믈리에가 되는 길은 이렇게 고난의 길이다. 특히 올해 대회 결선은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4번째 관문이 대표적. 5개의 와인을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하고 5분안에 품종, 지역, 빈티지를 맞춰야 하는데 심사위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모두 같은 프랑스 시라 품종이었기 때문이다. 시라인지 알아 맞추기 조차 힘든데 심지어 지역이 에르미따쥐, 코르나스, 보르도, 꼬뜨로띠, 생조셉으로 프랑스의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라 와인들이다.  이러니 천재적인 시음 능력을 지닌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도 울고 갈 일이다. 5개 와인을 빈티지까지 정확하게 맞추면 보너스 점수가 주어지는데 당연히 이를 맞춘 소믈리에는 없다. 시라는 커녕 피노누아 품종으로 착각한 소믈리에들이 많았다.

 

그랑 마레농 루베롱 2016 매그넘

첫번째 관문도 마찬가지. 일반병 두배 사이즈인 매그넘 보틀에 담긴 론 지역 와인 마레농의 그랑 마레농 루베롱 2016 을 디캔팅해서 서비스해야 하는데 잔뜩 긴장하다보니 두차례나 질문을 듣고도 디캔팅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서브를 한 소믈리에가 있을 정도. 두개의 디캔터를 사용해서 병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병을 수평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디캔터를 바꿔가며 와인을 따라야 10점 만점을 모두 받을 수 있다. 디캔팅을 하지 않았으니 10점이 통째로 날아갔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출제된 스피릿

다섯번째 관문의 난이도도 장난이 아니다. 다섯개의 잔에는 코냑 VSOP, 럼 5년산. 알마냑 VSOP, 위스키 5년산, 칼바도스 VSOP  스피릿이 담겼는데 스피릿의 이름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종류를 답해야한다.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증류해서 만드는 코냑과 알마냑을 구분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오랜 경력을 지닌 소믈리에도 대략난감이다. 일반인들은 코냑과 위스키 조차 구분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와인

두번째 관문은 4개의 잔에 담긴 와인을 시음해 앞에 높인 3병의 와인중 어느 와인인지 찾아내는 도전. 핵심은 4잔중 2잔이 같은 와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한잔은 이중에 없는 와인이라고 답하는 소믈리에가 있을 정도로 촉박한 시간에 결론 내리기 매우 어렵다. 세항목의 배점은 각 7점이고 같은 2잔이 어떤 와인인지 맞추면 무려 9점의 보너스 점수가 추가로 주어지니 같은 와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 모르면 3개 와인을 다 맞추더라도 12.5점이 날아간다. 

 

크레망 랑글로아 브뤼(Langlois Brut)

세번째 관문은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 생산되는 크레망 랑글로아 브뤼(Langlois Brut) 서브중 손님중 한명이 크레망 대신 맥주를 요구하는데 소믈리에가 어떻게 서브를 이어가는지 테스트한다. 스파클링을 모두 서브하고 맨 나중에 맥주를 따라야하는데 모든 소믈리에가 정답을 맞췄다.

 

마지막 관문은 좀 황당하다. 지구온난화로 시라품종이 새롭게 발견되는 지역이 있는데 지역과 아뺄라시옹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데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정답은 보르도이고 아뺄라시옹 뱅 드 프랑스다. 다음 대회때는 난이도 조절이 좀 필요할 듯하다.

 

2위 두가헌 최준선 소믈리에
3위 스쿠로 이정훈 소믈리에
4위 정식당 조재호 소믈리에

2위는 두가헌의 최준선 소믈리에, 3위는 스쿠로의 이정훈 소믈리에, 4위는 정식당 조재호 소믈리에가 차지했다. 우승자인 박민욱 소믈리에는 제8회 라피트 로칠드 스페셜 프라이즈 필기시험 최고득점을 얻어 수상자로 선정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박 소믈리에와 최 소믈리에는 오는 12월 10∼12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제5회 아시아 소믈리에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어드바이저 부문은 신세계엘엔비 조윤경씨가 수상했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