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지난 29일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는 비정규직 증가세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강도 높게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는 완화되지 않고 있다.
1년 사이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은 정책적 요인이 커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재정 투입으로 노인과 청년, 여성의 한시적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 고용률은 높아졌으나, 이들이 비정규직 통계에 잡히면서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정규직 비중이 확대된 측면이 있다. 통계의 착시를 고려하면 기존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정부의 얘기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곤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적용한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24.4%로 작년 8월의 21.2%에 비해 상승했고,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정규직 노동자가 1년 전보다 35만여명 감소했다는 점도 고용의 질이 악화했음을 보여준다. 임금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이 줄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확대됐다.
정부가 각별한 노력으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고, 임금에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고용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경기 하강 사이클에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등을 시행한 것이 노동시장을 경직시킨 것은 아닌지도 새겨봐야 한다.
통계청의 이번 조사 결과는 재정 동원 등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민간기업이 나서야 고용의 질이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라고 채근할 때마다 한쪽으론 채용을 늘리는 척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인력을 줄이거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있다. 여유 있는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의 경영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경제 불안과 수출 감소, 한일 무역 갈등, 세계 경제의 기관차인 중국 경제의 감속 등 안팎의 악재는 기업의 고용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을 예고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민간기업의 기를 살려 투자 의욕을 높이고 이를 통해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에 집중돼야 할 것이다. 특히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혁신 성장이 궤도에 오르도록 정책적 지원을 다 해야 한다.
민간 기업들은 투자와 연구개발을 가로막는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공지능(AI)을 활용할 신산업의 법적 토대가 될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현실도 비판했다.
특히 최근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이슈에서 보듯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당국의 규제 완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가 기업들이 원하는 모든 규제를 풀어줄 수는 없겠지만 업계의 비명을 외면하기엔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어렵다며 당정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고충을 해소해 업체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힘써왔지만, 비정규직 규모가 되레 1년 전보다 86만7000명 불어났다는 통계 조사 결과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등 정규직화를 독려해온 점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과다.
이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브리핑을 열고 조사 방식의 변화로 이번에 비정규직인 기간제 근로자 35만~50만명이 새롭게 포착됐기 때문에 과거 통계와 증감을 비교하는 게 불가하다고 해명했다.
통계 공표 직후 강신욱 통계청장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연이어 브리핑을 열고, 이번 조사는 국제노동기구(ILO)가 25년 만에 개정한 종사상 지위분류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경제활동인구조사와 '병행조사'를 함에 따라 기간제 근로자 약 35만∼50만명이 추가 포착됐다고 강조했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한 결과 과거에는 정규직으로 분류됐던 35만~50만명이 비정규직인 기간제 근로자로 추가로 잡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포착된 인원을 걷어내더라도 증가 폭 37만~52만명이 남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다른 요인들도 제시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사기법상 특이요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올해 취업자 증가 폭(51만4000명)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32~33% 정도 되기 때문에 그 비율만큼(16만5000명 가량)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 일자리 사업, 고령화와 여성 경제활동인구 확대, 서면 근로 계약서 작성 등 기타 제도 관행 개선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체적 인원은 제시하지 않고서 이처럼 언급했다.
김 차관은 또 '사업체 기간제 근로자 현황 조사', 고용보험에 가입된 기간제 근로자 수, 고용 형태별 근로자 공시 등 다른 조사에서는 기간제 근로자의 급격한 증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들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재부 "비정규직 급증한 거 아니다"
다만 비정규직 87만명이 갑자기 불어난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설명과 다른 견해를 내놨다.
김복순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 전문위원은 새로 포착된 기간제 근로자를 제외하고 최소 37만명의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과 관련해 연합뉴스에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과 올해 청년층에서 졸업생보다 재학생 취업이 늘면서 시간제 일자리로 일부 흘러 들어간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부수적으로는 경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한 데 대해 "기업에서 정규직을 안 쓰고 비정규직을 쓰려는 수요가 많은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이며, 그런 점이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보다 영향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기 하강 국면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으로 노동시스템을 개혁하면 상대적으로 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효과밖에 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경기가 안 좋은 가운데 구조조정을 하고,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 고용이 안 늘어나니 노인 일자리를 10만여개 늘렸고, 청년층은 단시간 근로가 증가했는데, 이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며 "정책 효과로 비정규직이 늘어난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1에 "(비정규직 증가는)급격히 인상한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그리고 전반적으로 생산성과 연계되지 않은 임금문제 때문이다"며 "정규직으로 뽑아 놓으면 초임 정규직 임금이 높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된다. 노동비용 자체가 크지 않을 때는 문제가 안 되는데 노동비용이 큰 상황에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다른 견해 지닌 전문가들…누구 말이 맞을까?
청와대는 비정규직이 급증했다는 분석에 대해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3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면서 "과거 (조사의) 질문이라면 정규직으로 조사됐을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황 수석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고용 지위와 관련한 부분을 바꾸고자 새로운 조사가 들어감에 따라 추가된 질문이 기존의 응답에 변화를 일으켜 추세와 다르게 비정규직 숫자가 상당히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왔다"고 언급했다.
그는 "올해 임금근로자가 51만명이 늘었는데 그 중 비정규직 비율을 3분의 1로만 잡아도 17∼18만명 이상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강조했다.
황 수석은 "현재 사용하는 비정규직은 2002년에 노사정이 합의한 개념으로, 논란이 많다"면서 "시간제 근로자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문제의식이 있어 새롭게 개념을 정의하자는데 노사정이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사 간 견해차가 크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범위와 규모를 측정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