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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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 고랭지 토사 못막아… 1000억 들여도 ‘흙탕물’된 내린천 [이슈 속으로]

강원 인북천 등 2곳 18년 치수 실패 / 상류 경사지 밭이 원인 / 감자·무·더덕 등 세로로 고랭지밭 조성 / 비만 내리면 밭흙, 아래로 쓸려 내려가 / 인삼밭 토사유실만 2018년 29만톤 추정 / 인북천 등 생태계 파괴 / ‘물반 고기반’ 청정지역 10년새 흙탕물 / 열목어·쏘가리·붕어 등 이제 자취 감춰 / 27만 찾던 래프팅족 11년새 6만명으로 / 지자체·환경부 ‘무대책’ / 흙탕물 우회로·옹벽쌓기 등 효과 적어 / 경작지 작물 전환 등 근본적 대책 절실 / 대부분 사유지… 정비할 법적 근거없어

“인북천 물고기의 씨가 말랐습니다. 쏘가리, 붕어는 물론이고 다슬기마저 사라졌습니다. 손바닥만 한 민물조개도 나왔는데, 흙탕물에 모두 죽은 거죠.”

지난달 29일 강원도 인제군 인북천 인근에서 만난 박광주(49) 서화2리 이장의 하소연이다. 그는 인북천이 관통하는 서화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기억 속 인북천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다양한 수생 동식물이 사는 놀이터였으며 삶터였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인북천이 변했다. 맑은 물 대신 흙탕물이 흘렀으며, 자갈이 깔렸던 하천바닥은 곳곳이 모래톱(모래사장)으로 뒤덮였다. 소(沼·물웅덩이)는 모래가 들어차면서 사라졌고 수생 동식물이 사는 생태계도 바뀌었다. 인북천 대표 물고기인 쏘가리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고, 하천 바닥 자갈에 붙어살던 다슬기, 민물조개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박 이장을 따라 둘러본 인북천 중류는 말 그대로 모래 천지였다. 천변에는 하류에서나 볼 만한 모래톱이 곳곳에 보였다. 이런 모습은 인북천 중상류까지 계속되다 인북천이 두 갈래로 나뉘는 서화2리 서성초등학교 위쪽부터 모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가령촌 쪽으로 이어진 만대천 부근은 모래가 가득했다. 박 이장은 “가령촌 위쪽에 있는 고랭지 밭과 인삼밭에서 내려오는 토사 때문에 하천 바닥이 모래투성이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인북천과 만대천이 ‘Y’자 모양으로 만나는 부분의 바닥은 왼쪽과 오른쪽(인북천 상류로, 주민들은 ‘성내천’이라 부름)이 확연히 차이를 보였다. 왼쪽은 모래가 가득 쌓여 냇가 일부에 모래언덕을 형성한 반면 오른쪽에는 모래가 적었다. 박 이장은 “비가 오는 날에는 물이 흙탕물과 맑은 물로 나뉘어 보일 정도”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강원도 인제군 인북천이 만대천(왼쪽)과 만나는 지점. 만대천을 통해 내려온 흙탕물이 인북천을 반으로 나눠 놨다. 인제군 제공

청정한 자연을 자랑했던 강원도 인제군이 수십년간 장마철과 갈수기 집중 호우 시 인북천과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하면서 속을 끓이고 있다. 하천 생태계 파괴와 관광객 감소, 농작물 훼손, 주민 생업 지장 등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한강 수계에 속한 인북천은 인제군 서화면 가전리에서 발원해 약 17.7㎞를 남류하다가 소양강으로 흘러가고, 내린천은 홍천 내면에서 발원해 북류하다가 인제 상남면을 통해 소양호 북단부로 흘러간다.

이에 환경부를 중심으로 흙탕물 방지·저감을 위해 2001년부터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소용이 없는 상태다. 인근 양구군과 홍천군의 무, 배추, 브로콜리, 인삼 등 고랭지 재배지에서 흘러 내리는 흙이 인북천과 내린천에 유입되는 탓으로 보인다. 급기야 인제군은 흙탕물 피해액 산정을 구체화하고, 인근 지자체와 환경부 등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흙탕물 발생에 따른 인제군 피해 산정 연구용역’도 발주했다. 용역 결과는 내년 3월 나온다.

◆인북천·내린천 흙탕물 신음에 주민들 피해도 막대

미산2리 이장을 지냈던 이은수(68)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열목어 등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가득했던 내린천이 지금은 흙탕물로 변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내린천은 열목어 산란기인 3∼4월에 ‘물 반 고기 반’ 할 정도로 열목어가 많았고, 가을에도 열목어가 쉽게 눈에 띄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상류에서 흙탕물이 내려오면서부터 열목어가 줄기 시작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이씨는 전했다.

인제군과 주민들에 따르면 인북천은 장마철을 비롯해 비가 올 때마다 흙탕물로 변하기 일쑤다. 태풍 영향으로 폭우가 내렸던 지난 9월에도 흙탕물로 가득했다. 하천 생태계와 주민 피해가 막대할 수밖에 없다. 인북천과 내린천 주변에 있던 민물고기 매운탕집 10여 군데는 거의 문을 닫았고, 쏘가리 등을 잡으려고 두 강을 찾았던 낚시꾼의 발길도 줄었다. 인북천 중류에 위치해 서화면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했던 서화 취수장도 상류로 옮겨졌다.

내린천의 주력 관광 상품이었던 래프팅도 큰 타격을 받았다. 래프팅 적기인 5∼6월에 흙탕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내린천에서 래프팅을 즐긴 관광객 수는 2007년 27만7000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6만4500명까지 떨어졌다. 인제군 관계자는 “래프팅을 하면 물이 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누가 흙탕물을 먹고 싶겠느냐”며 “래프팅을 하려는 사람들이 동강 등 다른 데로 가버린다”고 말했다.

◆정부와 관련 지자체 엉뚱한 대책으로 1000억 넘는 예산 허비

환경부는 강원도, 인제·양구·홍천군과 함께 두 천을 살리기 위해 2001년부터 1020억원을 들여 대형 침사지 준설, 흙탕물 우회로 개설, 돌망태 설치 등 흙탕물 정제 시설을 마련했다. 하천에 토사 유입을 막고자 완충 식생대를 조성하고 옹벽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흙탕물 발생의 원인은 건드리지 않고, 발생 이후 대처에 집중하면서 효과가 작다고 입을 모은다.

인제군 관계자는 “18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흙탕물을 줄이려고 했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근본 원인인 양구군 해안면과 홍천군 내면의 고랭지 밭과 인삼밭을 정비해야 하는데, 지자체 간 이견에다 해당 밭들이 사유지여서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구군과 홍천군의 밭은 평균 10∼20도 경사의 고랭지로 감자, 무, 더덕 등이 세로로 심어지다 보니, 빗물이 작물 사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흙도 쓸어내려간다는 게 인제군의 설명이다.

지난 9월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서 내려온 흙탕물로 더럽혀진 자운천(아래쪽)이 내린천 상류와 합쳐지는 모습. 인제군 제공

가장 많은 토사를 흘려보내는 인삼밭이 최근 양구군에서 급증한 것도 하천 오염을 부추긴다고 인제군은 본다. 지난해 양구군 해안면의 작물별 재배지 면적은 인삼이 4.73㎢로 압도적 1위였다. 이어 감자(2.79㎢), 벼(1.44㎢), 과수(1.42㎢) 순이었다. 강원도와 한국수환경관리연구소가 지난해 공개한 ‘2018 소양호 상류 비점오염원 관리대책 시행계획’에 따르면 양구군 해안면 인삼 경작지의 토사유실 가능 추정치는 29만7480t으로 가장 많다. 2위는 감자로 23만8307t이다.

◆작물 재배 방식이나 작물 종류 변경 목소리… 환경부는 “법적 근거 없다” 난색

최상기 인제군수는 “(양구군과 홍천군의) 경사지 고랭지 밭을 계단식으로 바꾸고, 인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주민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 해당 지자체는 물론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구군도 과수 등으로 작물을 전환할 경우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나 인삼밭에 대해선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양구군 관계자는 “(인삼 농가에서) 인삼을 계속 심는 한 토사 유출을 방지할 방법이 없다”며 “인삼밭 인근에 침사지를 준설하거나 옹벽을 쌓아 토사 유출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천군은 내면 자운2리 14만8000㎡를 대상으로 토사유출이 적은 명이나물 등 다년생 작물로 전환하는 사업을 내년에 시범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환경부 측은 “관련 법과 제도적 근거가 없어서 작물 전환이나 농법 변경 등을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제=글·사진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