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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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선원 2명 강제북송’ 근거 미비 논란… ‘국방장관 패싱’도 조사

정부, ‘16명 살해’ 北선박 북측에 인계 / 15m 길이 목선… 갑판·휴식장소 분리 / 엽기적 범행 쉽게 발각되지 않은 듯 / 통일부 “귀순보다 범죄 후 도주 판단" / 김연철 “죽더라도 北 돌아가겠다 말해” / 보수단체 “살인북송이나 다름 없다” / 鄭국방, ‘靑에 직보’ JSA중령 조사 지시
공개된 北선박 16명의 선원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주민 2명이 타고온 오징어잡이 선박이 8일 북한 인계를 위해 동해상을 이동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정부가 북한 어민 2명의 엽기적인 선상 살인사건 현장인 오징어잡이 배의 외부 모습을 공개했다. 강제추방된 2명을 포함해 고작 3명이 16명이나 되는 다수의 선원을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갑판과 휴식 장소가 분리돼 범행이 쉽게 발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우리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8일 통일부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이 선박은 외형상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했다가 우리 당국에 단속된 소형목선들과 비슷하다. 배의 길이는 15m(17t)로 지난 6월 삼척항에 몰래 입항해 논란이 됐던 소형목선(10m)보다는 크다.

 

배에 여유 공간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조업공간인 갑판과 아래쪽 휴식공간이 분리돼 있어 깊이 잠들어 있던 선원들은 반복적인 만행을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관계기관은 추정했다.

 

추방된 북한 주민 A씨, B씨는 북한 당국에 붙잡힌 C씨와 함께 선원들을 살해하고 동해 NLL을 넘어왔다가 지난 2일 우리 측에 나포됐다.

 

정부는 지난 7일 A씨, B씨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한 데 이어 이날 오후 2시51분 이들이 타고 온 목선을 동해의 NLL 부근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이와 관련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을 재판을 거치지 않고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서둘러 북한으로 돌려보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단체 한국자유민주정치회의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으로 송환되면 공개 처형당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통일부가 살려 달라 매달리는 귀순자들을 판문점에서 강제북송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행위, 즉 살인북송에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관련 법령을 준용(準用·규정을 그와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사항에 적용하는 일)했다고 설명했다.

 

김은한 통일부 공보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사 과정에서 분명히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힌 바는 있다”면서도 “여러 가지 발언의 일관성이라던가, 정황을 종합한 결과 순수한 귀순 과정의 의사라고 보기보다는 범죄 후 도주 목적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김 공보관은 “이들은 귀순 의사가 불인정됐고, 관련 매뉴얼 및 북한이탈주민법상의 수용절차가 적용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하지만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추방된 북한 주민이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을 분명히 했다”고 말해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이탈주민법상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한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송환과 관련한 근거가 미비하다는 지적에 대해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선상살인 혐의로 송환된 북한 주민에 관한 내용을 청와대에 직보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 D중령에 대해 경위 조사를 지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장관의 조사 지시에 따라 문자를 보낸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며 “안보지원사령부에서 보안 조사를 포함해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D중령은 전날 북한 주민 추방과 관련한 내용을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로 보낸 것으로 알려지며 지휘계통 ‘패싱’(통과) 논란을 일으켰다. 정 장관은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까지 북한 주민과 관련된 부분은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해당 중령은 유엔사 소속이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패싱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조병욱·엄형준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