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수사 중인 경찰이 최근 대법원에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1·2심 판결문과 공소장 제공을 요청했으나 대법원이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박 교수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상고심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대법원에 ‘박유하’ 판결문·공소장 요청…대법원은 ‘거절’
1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류 교수 관련 수사를 맡은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말 대법원에 박 교수의 1·2심 판결문과 공소장을 요청하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공문엔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출간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 무죄, 2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경찰에 접수된 피의자 류석춘 교수의 명예훼손 사건 수사에 참고하고자 공소장 및 1·2심 판결문 사본을 요청한다”고 적시됐다.
앞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 2곳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류 교수를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류 교수가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 과목 ‘발전사회확’ 강의 중 위안부일본군 피해자들과 관련해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 “위안부는 일본 민간이 주도하고 일본 정부가 방치한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돼 있다.
해당 단체들은 “(류 교수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자발적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할머니를 비롯한 국민에게 역사를 왜곡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의 망언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찰은 류 교수의 수사에 참고하기 위해 2017년 항소심에서 유죄로 판결 난 뒤 2년간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박 교수의 1·2심 판결문과 공소장을 요청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의 경우 2심에서 유죄가 났다“며 “어떤 논리구조로 유죄 판결이 났는지 참고하기 판결문과 공소장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경찰이 요청한 판결문과 공소장 제공을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박 교수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상고심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정의기억연대 등 일본군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로부터 건네받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자료와 그동안 유엔에서 채택됐던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등을 확보해 검토 중이며 조만간 류 교수를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류 교수는 입장을 묻는 질문에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항소심 “박유하 교수, 왜곡된 사실로 명예 훼손”…1심 뒤집고 유죄 선고
앞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박 교수는 1심에서 ‘학문의 자유’가 인정돼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선 ‘사실을 왜곡했다’며 유죄로 뒤집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2015년 11월 검찰은 박 교수가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들을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 등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성이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담았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학문의 자유엔 출판의 방법으로 학문적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유도 포함된다”며 무죄로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일본군)위안부는 전시에 강제매춘과 성폭력을 겪었다”는 1996년 유엔 인귄위원회의 ‘전쟁 중 성노예제 문제에 관한 보고서’ 등을 인용하며 “의사에 반해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에게 왜곡된 사실을 적시해 평가를 크게 훼손시켰다”며 박 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한편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명예훼손 수사·재판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 시민단체는 최근 ‘반일종족주의’란 책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자발성을 주장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이우연 낙성대 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