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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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기도 몰랐는데…이젠 운명 “건반 치는게 마냥 즐거워요”

윤이상 콩쿠르 깜짝 우승 15세 피아니스트 임윤찬 / 병역혜택 주는 국제 콩쿠르 / 19개국 154명 제치고 정상 / 특별상·영재상 포함 3관왕 / 하루 연습만 예닐곱 시간 / 어리지만 무대 중압감 없어 / 스승 손민수 교수가 롤모델 / 스페인서 첫 해외 독주회 / 성장세 가팔라 미래 기대 / 2020년도 콘서트 계획 가득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15세 피아니스트 임윤찬. 어린 나이에 성인 콩쿠르에서 우승한 데 따른 부담이 있느냐는 물음에 “경험 삼아 출전했는데 덜컥 우승해서 다른 콩쿠르 나가려면 더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거 같아요. 기분은 좋아요”라고 답했다. 이제원 기자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몇 안 되는 세계적 음악경연이다. 국가가 권위를 인정해서 우승자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국제콩쿠르가 총 28개인데 그중 우리나라가 개최하는 대회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제주국제관악콩쿠르, 그리고 윤이상콩쿠르뿐이다.

그래서 올해도 19개국에서 154명이 참여한 이번 윤이상콩쿠르에서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주로 대학생이 참여하는 대회에 참여한 단 1명의 15세 중학 3학년생이 우승은 물론 관객이 뽑은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특별상, 박성용 특별 영재상을 받아 3관왕이 됐다. 심사위원과 관객 의견이 일치했다는 건 그만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피아니스트가 두말할 필요 없는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지난 15일 인터뷰 장소인 카페에서 커피 대신 고른 딸기 요거트를 앞에 둔 화제의 주인공 임윤찬은 “우승은커녕 1라운드 통과도 자신할 수 없었고, 그저 관객에게 ‘너무 어리구나’라는 느낌만 주지 않으면서 스스로 만족할 무대를 만들고 내려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놀랐다”고 우승 당시 소감을 말했다. 현장 관객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도 맨 먼저 관객상을 받은 후 단상에 앉아 있던 임윤찬이 맨 마지막 우승자 발표 때 다시 자신이 호명되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생생하다.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어린 피아니스트가 거쳐온 과정은 인상적이다. 소년이 피아노를 만났고, 피아노가 그를 이끌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는데 7살 때 다른 아이들이 학원을 가니까 나도 별 생각 없이 그냥 동네 상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임윤찬 콩쿠르장면

동네 학원에선 곡을 항상 빨리 습득해 잘 치는 그런 수준이었다.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었던 곳은 예술의전당에서 운영하는 ‘음악영재아카데미’였다. 어느 날 영재아카데미 소개 방송을 본 것이 인연이 됐다. 1년에 한 번 영재를 선발하는데 임윤찬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실기시험에 합격했다.

“다들 실력이 대단해서 시험장에서 너무 당황했어요. 실기 순서가 다섯 번째였는데 제 앞 학생들이 너무 잘 쳤어요. 실기곡도 제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화려하고 어려운 곡인 데다 저는 한번 밟아본 적도 없던 페달을 막 밟고….”

옆에서 듣고 있던 임윤찬 모친도 그날 기억이 생생했다.

“윤찬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가긴 했는데 영재아카데미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때 ‘박자기(메트로놈)’를 처음 봤어요. 그래서 ‘찬이야. 저 형은 귀에 무슨 기계를 대고 있다’고…. 나중에 교수님이 ‘일단 박자기부터 사라’ 해서 박자기 사러 간 기억이 있어요. 하하하.”

그런데도 페달 밟던 앞 학생들은 다 떨어지고 임윤찬은 붙어 본격적인 피아노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하지만 강의 수준은 임윤찬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높았고 당장 “기초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죽었을 법한데 임윤찬은 “그럼에도 마냥 좋았다”고 한다.

매일 서너 시간씩 하던 연습은 초등학교 졸업 후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운영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입학하면서 예닐곱 시간으로 늘어났다. 초등학생일 때는 동네 친구들과 축구·야구를 즐기고 게임도 많이 했지만 요즘은 학교수업과 연습만으로 긴 하루를 보낸다. 다만 무한도전 재방송을 즐겨보고, 음악은 ‘80, 90년대 음악’이 자신의 취향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가수로는 ‘유재하’와 ‘김현식’을 꼽았다. 좋아하며 닮고 싶은 연주자로는 영재교육원 스승인 손민수 교수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그리고 다닐 트리포노프와 러셀 셔먼을 꼽았다.

임윤찬은 어린 피아니스트인데도 무대에 서는 중압감을 즐기는 듯하다. 무대에 올라 첫 곡을 시작하기 전이 가장 긴장되나 그 후부터는 큰 부담 없이 연주한다고 한다. 독주와 협연 중에서도 협연이 편하다. 그는 “콩쿠르 등에서만 접한 협연 경험은 아직 많지 않은데 피아노가 먼저 시작하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등을 빼면 다른 협연곡은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먼저 시작해서 무대에서 긴장을 풀 수가 있다”며 “독주는 외로운데 협주는 오케스트라가 옆에 있으니 긴장이 많이 안 된다. (같이 연주하는 부담은)내가 맞추면 된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임윤찬의 성장세는 빠르다. 지난해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쿠퍼 국제 콩쿠르 등 청소년콩쿠르에서 연이어 수상하다 올해 급기야 성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윤이상콩쿠르 이전부터 촉망받은 그를 부르는 무대도 많다. 지난 11일에는 주스페인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첫 해외 독주회까지 열었다.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콘서트에 참석한 스페인 청중은 어린 피아니스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내년에도 1월부터 차곡차곡 콘서트 계획이 잡히고 있어 임윤찬은 매일 새벽까지 다음 연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손도 커져서 큰 곡도 더 쉽게 치게 됐거든요. 악보 외우는 거요? 옛날엔 곡을 모르고 악보를 봤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곡은 머리에 있으니까 3일 정도 연습하면 외워져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