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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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 데뷔 10개월 만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삭발 단식에 장외투쟁, 광장정치

황교안 20일부터 단식 돌입 / 당안팎 쇄신, 자기희생 요구 쏟아져 / 절박함에 내민 단식카드...떼쓰기, 버려야할 유물 쓴소리 쏟아져 / 홍준표도 "3김 시대나 가능했던 일" / 정치 입문 10개월만에 남들 30년 걸린다는 야당 투사 스펙을 단숨에 / 전당대회 결투, 장외투쟁, 삭발, 광장정치에 이어 단식까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오후 3시부터 청와대앞에서 '지소미아 연장'과 '패스트트랙 저지'를 외치며 단식(국회로 이동해 진행)에 돌입했다. 야당 정치인 단식은 1983년 YS(김영삼), 1990년 DJ(김대중), 2003년 최병렬, 2009년 정세균 등 여러차례 있었지만 YS와 DJ를 정점으로 정치인 단식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호응은 옅어졌다. 그런 까닭에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 등이 단식을 삭발, 사퇴와 함께 버려야할 구시대 유물이라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황 대표 단식에 대해 명분, 상징성, 시기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한가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황 대표가 야당 투사라면 거쳐야 한다는, 남들은 30년 걸려서 한 ‘당 대표(총재)들의 투쟁방식’을 불과 10개월여 만에 후다닥 해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 쇄신, 패스트트랙 수사 압박에다 잠재적 경쟁자들 잇단 펀치에 내민 카드가 단식 

 

황 대표는 전날 일부 당 관계자에게 단식 의사를 내비친 데 이어 20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 때 "오늘 오후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가겠다"며 지소미아 종료 중단, 패스트트랙 포기라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막겠다는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는 오는 22일 자정을 기해 종료된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오는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이 들어있는 검찰개혁 법안은 다음 달 3일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황 대표의 단식선언을 위기감에서 꺼낸 카드로 평가했다. 현재 한국당은 인적쇄신과 재창당에 버금가는 혁신을 하라는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키를 쥔 사람은 결국 황 대표다. 

 

앞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로 당내 개혁파인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황 대표에게 자기희생을 주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황 대표는 사면초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전날 만난 청년들에게서 "난 요즘 샤이보수(Shy=수줍은 보수 지지자, 보수임을 드러내길 꺼려함)가 아니라 셰임보수(Shame=창피, 보수라 말하기가 부끄럽다)다"는 뼈아픈 말까지 들어야 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연일 대놓고 황 대표의 리더십과 전략 부재를 질타하고 있으며, 당권을 놓고 다퉜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김세연 의원이 차려준 기회라는 밥상을 걷어찼다"며 황 대표를 코너로 몰아 넣었다. TK출마 뜻을 접고 '서울 험지'에 나서겠다고 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움직임도 신경 쓰인다. 여기에 지도급 인사들의 험지출마를 요구한 초재선 의원들 목소리도 있다. 

 

또 당 지도부 지시에 따라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몸을 던졌다가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60여명 의원들도 달래야 할 판이다. 

 

당기 들고 인사하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 (고양=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2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전 총리가 당기를 들고 인사하고 있다. 2019.2.27 cityboy@yna.co.kr/2019-02-27 19:49:54/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黃 단식하는 날 나경원은 미국가고 '떼쓰기' '애잔' '버려야할 유물' 비난에 洪은 "오직 답답하면"서도 '지금이 3김시대냐'

 

황 대표가 단식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지만 정치권 반응은 싸늘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황 대표의 단식은 떼쓰기, 국회 보이콧, 웰빙 단식 등만 경험한 정치 초보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한껏 비틀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날도 너무 추워지고 (단식투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정쟁은) 끝도 없는 일이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당 유상진 대변인은 "정치가 아무리 ‘쇼 비즈니스’라고 하지만 황 대표는 또다시 헛발질하고 있음이 뻔해 보인다"며 "주말마다 걸핏하면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제1야당 대표의 모습이 한심하고 애잔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그동안 '삭발-단식-사퇴'는 21세기 국회의원이라면 버려야할 구시대 유물이다고 강조해 왔던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도 "위기를 단식으로 극복하려 해도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다"며 "(이러면 이제) 당 대표직 사퇴 카드만 남게 된다"고 비꼬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오죽 답답해서면 단식 생각을 했겠는가"고 이해를 표하면서도 "나를 따르라는 식의 당 운영으로는 아무런 쇄신을 이루지 못 한다. 그것은 소위 3김 시대나 이회창 총재 시절에나 가능 했던 방식이다"며 단식도 큰 결심이지만 당쇄신에 전력할 때라고 올바른 방향설정을 주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 대표와 당내 투톱인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가 과도하다'는 우리 입장을 미국에 전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 1월 15일 정치입문 10개월 만에 야당 투사 스펙 거의 채워...전당대회, 장외투쟁, 삭발, 단식, 광장정치까지 최단 신기록   

 

황 대표는 지난 1월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지금까지 불과 10여개월 만에 야당 투사가 걸어야 할 길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야당 투사에 필요한 스펙을 이처럼 단기간에 채운 인물은 찾아보기 드물다. 최단 신기록이다.

 

황 대표는 2월 27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차지했다. 남들 수십년 걸릴 일을 불과 44일 만에 해치웠다.

 

이어 4월 23일엔 패스트트랙 저지를 선언하며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8월 18일엔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며 원내투쟁과 더불어 장외투쟁을 다시 시작한다고 알렸다.

 

9월 16일 황 대표는 '조국 파면'과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을 촉구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다. 이후 개천절날인 10월 3일 '조국 퇴진' 광화문 100만 군중집회를 주도했다. 우리나라 정당역사상 최대규모의 광장정치라는 말까지 듣는 등 나름 황 대표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장관의 사태로 이른바 ‘조국 약발’이 떨어진 이후 당 전체가 급격히 무기력해지면서 코너에 몰렸다. 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여기 저기서 '리더십 부재', '쇄신 의지 실종', '책임론'을 들이대자 황 대표는 '단식'에 들어가 야당투사 스펙의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채우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지금은 이러한 스펙이 정치인 앞날을 보장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염두에 둔 듯 황 대표도 조만간 ‘당 쇄신을 위한 강도 높은 메지시’를 낼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자기 희생’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