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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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여권 밥그릇 늘리기 막겠다” 단식투쟁… 이럴 때인가 [이강은의 유감&공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는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을 시작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담요를 덮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당을 새롭게 하는 게 급선무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야당 대표가 느닷없이 장외로 나가 단식투쟁을 하겠다고 하니 참···. 솔직히 리더라면 누구나 기대할 만한 비전도 제시하고 뭔가 멋있어야 당원들이 따르기도 쉬운데 그렇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청와대 앞 광장에서 무기한 단식투쟁 돌입을 선언하자 한국당 소속으로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인사는 이렇게 탄식했다. 그는 “삭발 때처럼 황 대표의 단식투쟁에 과연 감동해서 박수쳐줄 국민이 얼마나 되겠냐”고도 했다. 황 대표가 밝힌 단식투쟁의 이유(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연동형 비례대표제 철회)마저 국민들에게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황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두고 “국민의 표를 도둑질해서 문재인 시대, 혹은 문재인 시대보다 더 못한 시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법으로 자신들(여권) 밥그릇 늘리기 법”이라고 성토했는데 일반 국민에게 확 와닿지 않는다는 얘기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경제를 비롯해 외교안보, 교육, 인사문제 등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온갖 악재와 실책으로 죽을 쑤면서도 ‘야당 복이 최고라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세간에 돈 지 오래이지만 바로 그 야당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에 실망해 등을 돌린 중도층이나 합리적 보수층도 한국당에는 더욱 질색하는 이유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모습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인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한국당엔 절호의 기회였던 ‘조국 찬스’도 허망하게 날려

 

‘조국 사태’를 통해 한국당이 정국 주도권을 탈환하고 내년 총선까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허망하게 날린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민심을 거스르고 자신들이 앞세운 핵심 가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훼손하면서까지 ‘조국 법무장관’ 카드를 밀어붙였다가 벼랑 끝까지 갔다. 극성 지지층과 지리멸렬한 야당만 믿고 조국을 감싸다 민심의 거센 역풍을 자초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당이 ‘조국 찬스’를 어떻게 활용할지 심사숙고한 결과는 조국 사퇴 공로 의원들에 대한 표창장·상품권 수여식이었다.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이후 차기 대선의 분수령이 될 내년 총선 대비에 착수해야 할 양당의 태도 역시 대조적이었다. 민주당은 정신을 바짝 차린 듯 여권 핵심 지지층의 눈밖에 난 금태섭 의원은 물론 청년과 여성이 다수 참여한 총선기획단을 꾸리며 면모 일신에 나섰다. 인지도와 공천 가능성이 높은 이철희, 표창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도 잇따랐다. 반면 한국당은 ‘역시나’였다. 황 대표 측근을 중심으로 참신함과 거리가 먼 인사들로 총선기획단이 채워졌으며, 의원들은 자기보다 남의 희생(불출마)만 부추기는 기류가 가득했다.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연합뉴스

◆‘좀비정당’, ‘노땅정당’ 소리까지 듣는 지경인데 단식투쟁이라니 

 

이 지경이 되자 결국 소장 개혁파의 대표주자격인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몸을 던졌다. 지난 16일 전격 불출마 선언을 한 김 의원은 “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면서 “이 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며 당을 해체하고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고,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 받는 한국당으로는 무너지는 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평소 점잖고 정제된 표현을 하는 김 의원이 맞나 싶을 만큼 격정적인 토로였다. 표현의 과격성을 떠나 그의 문제의식은 정치권 안팎과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안겼다.

 

그러나 황 대표는 다음날 “당 쇄신은 국민적 요구이고, 반드시 이뤄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과감하게 쇄신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구체적 방안은 접어둔  채 총선 패배 시 물러나겠다는 입장으로 갈음했다. 

 

한국당은 급기야 19일 ‘자유한국당 청년 정책 비전 발표회’에서 참석한 청년들로부터 “어디 가서 보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수치심이 든다”, “'한국당'하면 '노땅정당'이라는 이야기가 많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는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20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에서 총체적 국정실패 규탄을 위한 단식 투쟁에 나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찾아 대화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잔다르크TV2 캡쳐


 

누구보다도 한국당을 이끄는 황 대표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황 대표가 화살을 피하는 법으로 섣불리 단식투쟁을 선택한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한국당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제1야당으로서 과감한 인적쇄신과 내부 혁신을 통해 제 역할을 하면서 국리민복에 기여해주길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과는 동떨어진 선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단식을 시작하면서 “당을 쇄신하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저에게 부여된 칼을 들겠다. 국민의 눈높이 이상으로 처절하게 혁신하겠다”고 한 만큼 황 대표가 칼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한국당의 운명도 갈리게 됐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