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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한 번도 논의 안 된 ‘집단소송제’… 21대 국회서 재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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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대교 위에서 바라본 국회.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아 답답합니다.” (정부 관계자)

 

일부 변호사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BMW 화재 등에서 무리한 기획성 공동소송을 남발하자 정부가 ‘집단소송제’ 확대를 추진했지만 1년 넘게 국회에서 한차례도 논의가 이뤄지지 못 한 채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내년 4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5개월가량 앞두고, 집단소송제와 관련된 다른 법안 10여건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어 20대 국회에서 집단소송제 확대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21대 국회가 열리면 집단소송법안을 다시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지난해 9월 ‘집단소송제 확대 법안’ 발의…국회 논의 횟수 ‘0’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가 지난해 9월 행정안전부,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유관 부처·기관과 함께 발의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1년 넘게 국회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 한 채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해당 개정안은 2005년 증권 분야에 도입돼 피해자 일부가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함께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제조물과 식품 분야 등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즉 △제조물 책임 △담합·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부당 표시·광고 △금융소비자 보호 △개인정보 보호 △식품안전 △금융투자상품 등 집단피해 발생이 예상되는 분야로 적용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은 지난해 9월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됐다. 정부는 해당 개정안을 통해 집단소송제 적용범위가 넓어져도 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실제 집단소송제가 적용될 구체적인 소송에 대해 엄격히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기업 등의 반대로 정부 개정안은 물론 다른 법안들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한 개정안(김종민 민주당 의원안)의 경우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알고, 외부에서 관심을 가질 텐데 1년 넘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돈벌이로 전락한 기획성 공동소송…‘맘카페’ 뒤져서 소송 아이템 찾기도

 

정부가 집단소송제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배경은 기획성 공동소송이 일부 변호사들의 돈벌이로 전락했다는 우려 탓이다. 현재는 증권 분야에만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있는 바람에 BMW 차량 화재나 통신·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등 다른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이 개별적으로 기획성 공동소송에 참여해 피해를 보상받아야 한다.

 

이에 일부 변호사들은 온라인을 통해 피해자를 모아 패소 여부와 상관없이 받는 착수금 등을 위해 무리하게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폐단이 벌어졌다. 만약 피해자 100명이 10만원씩만 착수금을 지급해도 변호사는 승패와 상관없이 1000만원을 받는다. 기획성 공동소송이 변호사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미세먼지와 관련해 기획성 공동소송을 추진한 한 변호사는 “피해자를 모을수록 받는 돈이 커진다”며 “맘카페 등에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날 본지가 대형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집단소송’(인터넷 등에선 ‘기획성 공동소송’이 흔히 ‘집단소송’으로 불린다)을 검색한 결과 통신사·카드사 개인정보 유출과 BMW 차량 화재, 가슴 보형물 피해 등 290여개의 기획성 공동소송 카페가 개설·운영됐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원고 혹은 피고가 10인 이상인 소송(1심 다수당사자 민사 소송 기준)은 8244건이다. 2014년 6812건 이후 △2015년 7060건 △2016년 7386건 △2017년 7747건을 기록했다.

2014년 1월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억400만여건의 고객 정보유출 사태를 부른 카드3사 사장들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당시 손병익 NH농협카드 분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연합뉴스

기획성 공동소송의 경우 피해자 측이 승소하는 경우도 드물다. 기업을 상대로 이뤄지는데 이들은 대형로펌 등을 선임해 맞대응한다. 또 다수 피해자별로 상황이 달라 1명의 변호사가 모든 피해에 대한 기업의 과실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지난해 누진세 반환 기획성 공동소송의 경우 5000여명이 참여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재판이 진행됐지만 피해자 측이 패소했다.

 

재판이 불성실하게 진행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회장의 배임·횡령 등으로 상장 폐지된 한 코스닥 상장사를 상대로 기획성 공동소송에 참여했던 정모(31)씨는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 인감증명서 등을 보냈는데 진행 결과에 대해 듣지 못했고, 나중에 패소했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집단소송을 담당했던 한 재경지법의 판사도 “100명이 참여한다고 하면 100명에 대한 모든 증거자료가 제출돼야 하는데 변호사가 일부만 제출하고 갈음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본회의장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문가 ‘의견분분’…법무부 “21대 국회 열리면 집단소송제 확대 재추진”

 

집단소송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비재 분야로 집단소송 대상을 확대하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며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개별 피해자가 소송을 따로 제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대 측은 소송남발로 기업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본인이 참여를 안 해도 누군가 소송에서 이기면 본인도 보상을 받는다“며 “구체적 인과관계, 손해가 입증되지 않아도 기업은 배상해야 해 기업 부담이 상당히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법무부는 집단소송제 적용 범위 확대를 위해 발의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된다면 21대 국회에서 재추진할 작정이다. 법무부는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회를 갖고 기존 집단소송제를 확대·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현재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한 개정안이 임기만료로 폐기된다고 해도 내년 4월 총선 이후 개정안을 가다듬어 다시 발의할 계획”이라며 “21대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과거 소송에도 집단소송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