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최근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이 내년에 무더기로 강등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평가대상 24개 한국 민간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인 14개의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는데, 향후 신용등급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무역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가 중국을 위시한 세계경제의 둔화 움직임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홍콩 민주화 투쟁이 확대돼 미·중 간에 정치·외교·군사적인 대립을 불러올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 문제로 인해 미국과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미·중 분쟁과 중국경제 둔화가 한국의 화학·철강·전자·정보통신 기업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지속되는 건설업과 민간소비 부진으로 인한 유통업의 침체도 대기업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실제로 무디스는 지난 8월 이미 한국의 대형 마트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고, 건설소재 대기업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Ba1)으로 격하했다. 내수 부진, 무역환경 악화, 산업 패러다임 전환 등 구조적 요인이 국내기업의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를 초래하고 이것이 상승 작용해 신용등급을 크게 떨어뜨린 것이다.
사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졌다. 2017년 3.2%에서 2018년 2.7%, 그리고 2019년에는 2.0%대로 추락했다. 2009년 0.8% 성장 이래 10년 만에 가장 낮은 성적이다. 경제가 이렇게 부진한 것은 수출부진 때문이다. 2017년만 해도 15.8%나 증가하던 수출(통관기준)이 2018년 5.4%로 떨어졌고, 2019년에는 11월까지 약 10%가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급락했다. 작년 12월 시작해 올해 11월까지 연속 12개월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12개월 연속 수출 감소는 1966년 이후 지금까지 53년 동안 세 번째로 긴 장기 연속 수출 감소에 해당된다. 만약 12월에도 감소하면 두 번째로 긴 13개월 연속 수출 감소가 된다.
요즘 수출 감소율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비관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중 간의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또 중국과 세계경제의 둔화가 심화한다면 2015년과 2016년 19개월 최장기간 수출부진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고,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신용등급은 더욱더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떨어지게 되면 국가신용등급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 간의 방위비 협상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면 한국의 신용등급은 한두 단계 하락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국내 유입된 외국인투자자금이 점차 빠져나갈 것이고, 국내 시장금리와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다. 이미 미국(1.75%)보다 낮은 국내 기준금리(1.25%)를 감안할 때 외국자금의 경쟁적 해외유출 가능성은 매우 높다.
2019년 10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순자산은 4798억달러다.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 외환보유액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식 4672억달러, 채권 1054억달러로 합계 5726억달러다. 이 금액은 통상 우리나라 대외부채를 계산할 때 제외된다. 만약 외국인이 투자자금을 모두 회수해 간다면 약 928억달러가 부족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은행 보유액 4047억달러를 모두 다 지불한다고 해도 모자라고 이에 따라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물론 중국·아세안·캐나다 등 다른 나라와의 통화스와프(지원국의 미국 달러와 요청국의 자국 통화를 맞바꿔 주는 것)가 있으므로 외환부족 상태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민간부문에서 급격한 달러 투기 수요가 일어난다면 통화스와프 계약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장기간 지속된 내수·수출 복합불황에 더해 만에 하나 미국과의 방위비 갈등, 남북 간의 갈등 악화 등으로 국가신용등급 하락이 일어난다면 1997년이나 2008년 위기 때처럼 급격한 외자유출에 따른 금융시장 위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남북관계는 물론 미국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를 특별히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