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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특정비밀보호법’이 방사능 위험 알 수 없게 한다? [FACT IN 뉴스]

“특정비밀보호법이 (일본의) 언론과 학회에 영향을 주고, 일본 정부에도 핑곗거리를 마련해 준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출신 김익중 전 동국대 의대 교수는 지난 1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일본의 ‘특정비밀보호법’ 때문에 언론과 학계 등이 영향을 받아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된 언급을 못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김 전 교수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에 관해서 언론이나 의약계의 보도나 연구가 현저히 적다는 것을 지적했다.

 

일본 방사능과 관련된 이슈는 연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일본 정부의 법안 탓에 원전과 관련한 여론이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인지를 알아보고자 ‘특정비밀보호법’을 살펴봤다.

 

◆일본의 ‘특정비밀보호법’, 무슨 내용 담고 있나

 

일본의 ‘특정비밀보호법’은 2013년 제정 당시부터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논란이 있었다. 시기상으로 봤을 때 방사능 관련 여론을 막으려고 한다며 ‘원전 정보 숨기기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시행 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법안을 향한 우려의 시각이 나온다.

 

특정비밀보호법의 일본어 정식 명칭은 ‘특정비밀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特定秘密の保護に関する法律案)이다.

아베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법안의 표면적인 목적은 ‘일본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국방, 외교, 테러 등 관련 정보를 적절히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정보를 정하는 기준이 자의적이라고 봤다. 해당 법안에서 ‘비밀’로 지정이 가능하다고 분류되는 항목은 ▲방위 ▲외교 ▲특정 유해 활동(스파이 행위 등) ▲테러방지 등에 관한 정보 4가지이다.

 

행정기관의 장이 비밀이라고 선정한 내용을 유출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자는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는 강력한 법안이다. 특정비밀을 보도한 기자도 처벌될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되며 논란을 키웠다.

 

제정 당시 야당은 물론 195개 지자체나 시민단체를 포함해 국민의 거센 반발을 받았지만, 아베 총리는 힘의 논리를 앞세워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밀을 지정할 수 있는 행정기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 내각관방, 경찰청, 법무성 등 총 20개다. 비밀로 지정되는 유효기간은 최대 30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특정 비밀 보호법 시행령 설명 자료. 일본 내각관방 홈페이지

특정비밀 취급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자는 적성검사를 통해 선정하는데 해당 직원과 가족의 ▲범죄·징계 경력 ▲약물의 남용과 영향 ▲정신질환 여부뿐 아니라 ▲음주 절제 상황 ▲경제 상황까지 조사를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법 전문가인 한국법제연구원 최환용 부원장은 “일본 법안에서 이렇게까지 자세한 법안을 본 적이 없다”며 “이 법안을 운용하기 위해 만든 기관도 4개나 된다. 상당히 이례적인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특정비밀보호법’은 언론과 학계에 영향을 미친다?

 

2014년 법안 이후 5년여가 지났다. 이 법안이 언론과 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비밀 지정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이뤄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5년간 일본 정부에서 비밀로 선정된 항목은 몇 개나 될까? 일본 내각관방 홈페이지에 공개된 ‘특정비밀의 지정사항 열람표’에 따르면 행정기관이 지정한 비밀 개수는 5년간 581건에 달한다(2019년 7월 기준). 올해만 해도 1월부터 7월까지 30건이 지정됐다. 김 전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런 법이 만들어지면 국가 전체의 정보 공개를 위축시킨다”며 “내가 가진 이 지식을 이야기했을 때 이 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한다”고 설명했다.

 

특정비밀이 기록된 문서 수는 2016년, 2017년, 2018년 각각 32만6000여건, 38만3000여건, 44만여건이다. 몇 항에 근거한 비밀 지정인지는 설명이 나오지만, 요건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서 그 내용을 추정하기도 어렵다.

 

최 부원장은 “나 역시 이전과 달리 일본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다”며 “여러 일본 지인들이 언론의 통제에 불만을 토로한다. 행정자료가 공개가 안 되면 쓸 수 있는 내용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이나 방사능 관련 내용도 ‘비밀’로 지정됐나?

 

비밀로 지정된 581건 중 원전 등에 관련된 사항은 몇 개나 될까? 현재 내각관방 홈페이지에는 비밀 지정 건수만 기록되어 있을 뿐 상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아 관련 사항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법이 직간접적으로 일본 내 투명한 정보 공개를 방해하며, 원전사고 관련 뉴스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최 부원장은 “비밀로 지정할 수 있는 사안을 보면 방위에 관한 사항만 해도 10개의 기준을 정하고, 외교도 5개다. (비밀이 될 수 있는) 요건 자체가 ‘그냥 다’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원전사고와 관련된 내용은 비밀 지정 4개 카테고리에 어디든지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자력 이용과 관련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확보를 소관 업무로 하는 ‘원자력규제위원회’ 역시 비밀을 지정할 수 있는 행정기관 20개 중 하나다. 이 위원회는 2014년 12월 8일 특정비밀보호법 시행과 관련해 ‘원자력 규제위원회 특정비밀 보호 규정’을 제정했다.

특정비밀의 지정사항 열람표. 일본 내각관방 홈페이지

내각관방이 공개한 ‘특정비밀의 지정사항 열람표’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원자력규제위가 비밀로 지정한 사항은 0건으로 나온다. 하지만 일본에는 원자력 관련 기관이 다양한 부처 하에 존재하며, 내각부 안에는 현재 ‘원자력방재회의’나 ‘원자력방재본부’같은 원자력 관련 기관들이 있다. 내각관방이 비밀로 지정한 87건 중 원전사고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원자력규제위가 앞으로 원전사고 관련 내용을 비밀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최 부원장은 “일본이 의원내각제이고 내각총리대신의 권한이 매우 강력하다는 점에서 내각관방이 원전사고와 관련한 사항을 비밀로 지정해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여러 방면에서 언론 취재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밀 지정 건수가 581건이 넘으면서 언론계와 의약계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다수 증언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내각제의 특성상 내각관방의 권한이 강하고 그 안에 원자력 관련 기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준과 요건이 모호한 특정비밀보호법의 특성상 안전과 관련해 어떤 심각한 사안이 비밀로 지정돼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명확히 방사능과 관련된 규제가 비밀로 지정된 건에 포함된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판단유보'라고 말할 수 있다.

 

장현은 인턴기자 jang54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