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 수사하는 내내 ‘표적수사’,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다. 김 전 시장이 공천을 받는 날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하거나 출마선언을 할 때 경찰청장이 울산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수사의지를 표명하는 등 최근 불거진 ‘하명수사’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공교로운 부분이 많다.
울산지방경찰청은 김 전 시장이 울산시장 후보로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던 날인 지난해 3월16일 울산시청 비서실과 건축주택과를 비롯한 공사 관련 부서 등 사무실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김 전 시장의 측근 비리 의혹은 지방선거 전 지역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비서실장의 비리의혹 사건으로 시작한 경찰의 수사는 김 전 시장의 친·인척 이권개입의혹 사건, 2012년 김 전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후원금 쪼개기 사건으로까지 확대됐다. 경찰은 김 전 시장 측근 비리의혹 수사와 관련, 선거기간에 친·인척 등을 줄줄이 소환하고 체포영장을 신청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김 전 시장이 공식 출마선언을 하던 지난해 5월9일에는 당시 경찰총수였던 이철성 전 경찰청장이 울산경찰청을 찾아 김 전 시장 측 수사 관련 유죄 입증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당시 울산경찰청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검찰과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되면서 수사가 미진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었다.
이 전 청장은 이날 “구속이 수사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며 “경찰, 검찰, 법원의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실질적 수사 결과다. 울산청이 잘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찰 수사를 놓고 ‘부실수사’ 논란이 컸다. 경찰은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뇌물수수 혐의를 함께 적용했다.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은 지역 레미콘업체의 부탁을 받고 아파트 건설현장 레미콘 납품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여기에 레미콘업체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혐의를 더한 것이다.
비서실장은 경찰이 골프 접대를 받았다고 밝힌 2017년 6월 24일 자신의 카드로 직접 결제를 했다며 카드 이용내역을 공개하며 이를 반박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기본적인 기초조사 등 범죄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수사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 하명을 받아 김 전 시장 측근을 수사했다는 보도에 대해 “악의적인 여론전이 전개되고 있다”며 “당장 검찰수사를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황 청장은 27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통상적인 업무절차를 왜곡해 보려고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세력이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靑 “김기현 첩보 최초 출처는 익명의 투서”
청와대는 지난해 6·13 지방선거 개입 의혹을 촉발한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익명의 투서’로 확보했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의 ‘최초 출처’는 이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핵심인데, 청와대를 상대로는 알기 어렵게 된 셈이다.
28일 청와대·경찰 관계자 등의 말 등을 종합하면 김 전 시장 비위에 대한 첩보는 2017년 청와대에 우편으로 제보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민정비서관이던 백원우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김기현 첩보’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했고 박 비서관이 실무진을 통해 이를 경찰청에 이첩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경찰 주장의 논리를 따르면 김 전 시장 첩보는 법률상 민정비서관에게 금지된 선출직에 대한 ‘표적 수집’으로 확보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반면 ‘투서→백 민정비서관→박 반부패비서관→경찰청’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첩보 수집·이첩 체계가 이뤄지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투서 형태로 들어오는 첩보는 민심을 수집하는 민정비서관과 청와대 내부를 다잡는 공직기강비서관보다는 사정기관을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실에 넘겨 처리하는 게 자연스러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김 전 시장 관련 수사를 억지로 하명사건으로 꾸며내고 있는 것”이라며 “투서형태의 첩보를 청와대가 대체 어떻게 처리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사정기관 사이에선 다른 해석도 나온다. 인지사실을 남기기 곤란한 사건의 경우 익명의 투서 형태로 수사기관 스스로 접수하는 관행이 흔했다는 것이다. 익명의 투서로 접수된 사건이라고 해서 ‘적극적 첩보수집 행위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박 반부패비서관의 사의설이 돌고 있다. 박 비서관은 ‘조국 사태’ 당시에도 “힘들다”며 주변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가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정권 실세들은 박 비서관을 검찰쪽 사람으로 의심하고 있고 친정인 검찰은 박 비서관에게 거리를 두면서 그의 처지가 딱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29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건의 입수과정 등을 상세히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대전=이보람·임정재 기자, 박현준·이희경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