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황영미의영화산책] 겨울나기, 불우이웃과 함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본격적인 겨울철을 맞이해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시행코자 위기에 처한 복지 소외계층 찾기에 나서고 있다. 2018년 증평군에서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자살했지만, 아파트 관리비 연체로 석 달여 만에야 주위에 알려졌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복지 사각지대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할 필요성에서 긴급복지 신고의무자 교육도 실시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88년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이 사건은 엄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4명의 사생아들이 엄마와 함께 한 아파트로 이사 오는 데서 시작된다. 엄마마저 아이들을 버리자, 상상을 초월하는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남매들은 각자가 고아원으로 흩어지는 것을 우려해 이웃 모르게 조용히 살아간다. 전기와 물마저 끊어지자 아이들은 공원에서 몸을 씻고 옷을 빨며, 식당에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살아간다. 깨끗했던 아이들 옷은 구멍이 숭숭 나고 더러워진다. 그러다 한 아이가 사망하게 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리들 주변에 이런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영화는 묻고 있다.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장남 아키라 역을 한 야기라 유야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야기라 유야의 처연한 눈길이 주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 도시, 더구나 아파트라는 공간은 이웃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기 쉽다. 버려진 이 4남매의 상황은 엄마의 무책임으로 빚어진 것이지만, 과연 엄마의 무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너무도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어려운 상황을 혼자 도맡아 책임지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아키라의 눈빛과 표정을 통해 당신들도 이렇게 담담하게 이 사건을 대하고 있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있다. 카메라의 객관적 거리만큼 관객의 가슴속은 더욱 깊게 아파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동절기가 치명적이다. 겨울 코트를 꺼내고, 김장을 하는 등 우리 가정의 겨울나기에만 신경 쓰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주변의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진정한 월동준비일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