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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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내려간 특감반원 지목돼… 靑 하명 의혹 더 커져 [檢수사관 사망 파장]

숨진 수사관 첩보 직접 가공 의심 받아와 / 검찰 조사 앞두고 심리적 압박 컸을 듯 / 일각선 “檢, 백원우 단서 충분히 확보” / 당시 청와대 관계자 줄소환 이어질 듯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휘하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A씨가 1일 오후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 A수사관은 이날 오후 6시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관련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연합뉴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의 수사 의혹을 푸는 ‘키맨’으로 지목된 검찰 수사관 A씨의 사망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A씨는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김기현 첩보’를 직접 가공한 인물로 의심받던 상황이었다. 그가 울산경찰청의 수사가 진행 중일 당시 울산에 내려가 경찰의 수사 상황을 살폈다는 의혹도 있다.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이 단지 ‘설’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A씨 조사 없이도 백 전 비서관을 추궁할 단서를 충분히 확보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경찰 출신 수사관과 함께 ‘백원우 별동대’로 활동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전 시장에 대한 수사 단초를 경찰에 제공한 첩보를 직접 가공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고 한다. 당장 참고인 조사까지 앞둔 상황이었다.

법조계에선 A씨의 극단적 선택으로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A씨는 이날 검찰 조사를 앞두고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서는 친정인 검찰에 불려가 거짓 진술을 할 수도,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곤혹스런 처지였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해당 첩보에는 김 전 시장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법리적으로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정리돼 있었다고 한다”면서 “일반인이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백 전 비서관 밑에서 근무하던 수사관 가운데 1명이 했을 텐데, 그렇다면 검찰 출신 수사관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A씨가 해당 첩보를 가공했을 것으로 의심받아 왔다”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청와대에서 해당 첩보가 가공됐는지를 묻기 위해 이날 A씨를 소환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 수사에서 결정적인 ‘인적 증거’로 볼 수 있는 A씨가 숨졌지만, 검찰이 상당수 유의미한 단서를 포착해 수사를 대규모로 벌이고 있는 만큼 장차 백 전 비서관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줄소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법조계 견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이 사건은 작년부터 울산지검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사정변경’ 사유를 발견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관됐던 것”이라며 “그게 무엇인지는 조만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첩보’ 의혹 사건에 청와대가 연루돼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검찰 간부도 “울산지검 차원에서는 이 사건 수사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만큼 수사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검찰 반부패수사부(옛 특별수사부) 출신 변호사도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A씨가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거짓진술을 하거나 부인할 경우 ‘친정’인 검찰을 배신하는 격이어서 갈등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 전 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를 지휘했던 건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이었다”며 “하지만 울산지검 입장에선 청와대 관계자는커녕 황 청장 수사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이 사건 수사는 검찰이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에서는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울산지검과 울산경찰청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특감반원을 내려보냈었다”는 해명을 한 것을 두고 자충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지역 수사기관 간 갈등을 어떻게 일개 수사관이 내려가 중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