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함께 미세먼지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지난봄 발생한 사상 초유의 고농도 미세먼지 사태를 기억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호흡기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시민들이 부쩍 늘어난 일주일이었다. 정부가 미세먼지를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이끄는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출범한 것은, 미세먼지에 대응하려면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의 결과였다.
지난 9월30일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고농도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라는 이름의 첫 번째 정책제안을 발표했다. 출범 이후 다섯 달 동안 산업계와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100회 이상의 전문가 토론과 국민정책참여단 500여 명의 숙의를 거친 결과다. 제안에는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기인 겨울철과 봄철에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최대 27기까지 중단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노후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는 등 과감한 정책들이 포함됐다.
계절관리제에 대해서는 언론으로부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과거 정책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몇 가지 이유로 계절관리제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비판의 근거로 드는 것은 ‘탈원전’과 ‘중국’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탈원전 정책은 건드리지 않고 중국 영향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우선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단기 정책대안으로 원전을 거론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찬반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원전 안전성과 경제성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원전이 당장 올해와 내년에 추진할 미세먼지 대책의 대안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전 건설은 짧게 잡아도 8년에서 10년 이상 걸린다. 10년 후라면 우리는 이미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폐쇄 결정이 난 원자로를 재가동하자는 주장은 어떤가. 월성 1호기는 현재로서는 천문학적인 적자와 안전에 대한 우려를 상쇄할 정도로 재가동의 이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등 국외영향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세먼지는 국경을 넘어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치므로 외교적인 노력과 대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접 국가들의 공동행동을 가능케 하는 과학적 기반과 제도적 틀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모범사례로 꼽히는 유럽의 산성비협약도 협상에만 7년 이상이 걸렸다. 상호 비난과 책임 공방은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엔 기후변화 협상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을 찾아내고 사회 시스템을 교정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근본 가치에 대한 명확한 목표 설정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인내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발생원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다자 협력의 역사적 경험을 활용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 겸 호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