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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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금주’ 약속 지킨 30대 음주운전자 감형

재판부 ‘치료 사법’ 실험 결실 / 보석 후 ‘10시前 귀가’ 매일 보고 / 판·검사 등 온라인에 격려 댓글 / 법원, 징역 6월에 집유 1년 선고 / “형벌보다 교화… 정식 시행 기대”

“피고인은 보석으로 석방됐을 때부터 현재까지 3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4일 서울고법 303호 법정에서 열린 허모(34)씨의 선고기일에서 재판장인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가 허씨에게 냈던 과제는 3개월 동안 금주하며 오후 10시까지 귀가해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 활동 보고서를 비공개 카페에 올리는 것이었다.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은 보고서를 통해 허씨의 과제 수행을 감독하고, 격려의 댓글을 달며 소통했다.

국내 최초로 시행된 ‘치유법원 프로그램’ 첫 대상자인 허씨는 이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허씨는 음주 뺑소니와 측정에 불응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됐다. 지난 8월 허씨의 항소심 첫 재판에서 재판부가 프로그램 참여를 제안했고, 허씨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의 이러한 제안은 구금생활을 통한 교화보다 일정 조건을 걸고 스스로 지킬 수 있게 해 음주에 대한 자기 절제력을 키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 ‘치료 사법’의 일환이다.

재판부는 “허씨는 3개월간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재판부와 약속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바람직한 미래와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고, 믿음직한 남편이 되기 위한 약속이었다”며 “피고인은 약속을 잘 지켰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허씨에게 “3개월 전 죄수복을 입고 피고인석에 서 있었던 것을 기억하라”면서 “3개월이 지난 후 피고인은 변화했느냐.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면 첫 졸업자로서 밝고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또 “비공개 카페는 피고인에게 작은 역사의 기록으로 허씨에게는 계속 열어둘 예정이니 살면서 필요한 분들에게 보여주고 메시지를 전달하라”며 “치유법원 프로그램 시범실시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에도 정식 시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음주운전은 경미하고 피해자와 합의도 했지만, 오히려 피고인의 차가 뒤집혀 본인에게 위험한 순간이었다”며 “음주운전은 상대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허씨는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가능한 한 운전하지 말 것,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저녁 10시까지는 귀가할 것.” 재판부는 허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1년간 보호관찰명령을 내리며 끝까지 이렇게 당부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